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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하고 변함없는 참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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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해스님 작성일03-06-12 00:00 조회6,645회 댓글0건

본문

“천룡 팔부 신장들이 자비로 보호하고,
백천 삼매 속히 닦아 성취하고, 가이없는
이 몸은 밝은 빛이 깊게 되어, 가이없는 이 마음은
신통력을 감추는 곳, 번뇌 티끌 모두 싣고
고통바다 건너서 방편문을 넘어서 깨달음을 얻겠네.
자비로운 관세음께 귀의하여 원하오니,
모든 진리 얻게 하고 지혜 눈을 얻게 하여
모든 중생 제도케 하옵소서.
자비로운 관세음께 귀의하여 원하오니,
반야심을 발하게 하고 하루 빨리 고해바다 건너가서
계·정·혜를 빨리 얻게 하고, 하루 빨리 법신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이 내용은 우리가 부처님 앞에서 법회를 볼 때나,
기도를 할 때 언제나 외우는 천수경의 일부분을 약해서
풀어 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천수경을 항상 독송하면서도
근본 뜻은 마음에 새기지 아니하고 외우기만 합니다.
아무리 좋은 부처님 말씀, 진리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마음에 새기지 아니하고 입으로만 외운다면
한낱 입으로만 부르는 노래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실제 법상에 앉아서 부처님의 말씀이 이렇다, 저렇다
아무리 말을 해도 우리의 마음을 열지 않는 한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내 마음의 눈을 밝히면
모든 것이 다 부처님의 법문이고 모든 것이
부처님의 모습입니다. 내 마음의 눈을 뜨고
내 마음을 밝히면 부는 바람소리, 지저귀는 새소리,
세속에서 소리 지르고 있는 모든 소리들이
그대로 부처님의 법문으로 들릴 수가 있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내가 욕심이 가득해서 마음이 어두우면
모든 사람이 다 욕심쟁이고, 모든 사람이
다 나쁜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현상이 그대로 지옥으로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부처님 앞에 나올 때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마음의 눈을 뜨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늘 중생심과 부처님 마음의 가운데서
선택의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부처님께 기도하고, 때에 따라서는
이웃사람이 뭐라고 하면 저놈의 것 망해 버리라고
가랑이 찢어지라고 하는 마음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편도 미워서 바가지를 긁다가
때에 따라서는 흐뭇해서 고마울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중생심과 부처님 마음 사이를
왔다갔다합니다. 중생심 가까이로 가려고 할 때
한 마음을 돌이켜서 내 이웃,
내 가족을 예쁜 마음으로 봐 주고 예쁜 꽃으로 보고,
나아가 부처님으로 보일 때는 천룡팔부 신장들이
저절로 나를 보호해 주고 내가 하는 일마다
절로 잘되게 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옛날부터 지어온 모든 죄업 욕심내고,
성내고, 어리석어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몸과
입과 뜻으로 지어서 생긴 것, 내 이제 모두 참회하나이다.
참회진언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참회게 ‘아석소조제악업 개유무시탐진치 종신구의지소생 일체아금개참회’하며 천수경을 외웁니다.
그런데 마음으로부터 내 잘못을 참회하고
다시는 내마음 속에서 이런 성내고 욕심내는 것을
안하겠다고 실지로 이렇게 참회합니까?
몇 분이나 이렇게 참회합니까? 그냥
노래 부르듯 하고 말죠! 만약 이럴진대는 우리 모두
복을 받지 못합니다.
기도·불공·염불·참선 이 모두는 내 자신 속에 있는
본성인 불성을 키워나가기 위함이고
그것을 발견해나가기 위한 방법입니다.
내 한마음 속의 그 마음을 실천하고 옮길 때
비로소 복이 오는 것입니다. 중생의 번뇌·중생의 고통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자신 속에 있는 것이며,
또한 부처님의 법문·부처님의 가르침도
내 자신 속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신도들은 기도 염불하면서 복 받을 생각만 하고,
내 속에 있는 부처님의 도리를 터득해서 참된 행복을
얻으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에는 아무리 염불하고
기도해도 한낱 노래 부르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報化非眞了妄緣 法身淸淨廣無邊
千江有水千江月 萬里無雲萬里天
보신과 화신은 참몸이 아니라 인연인 것을 알고
법의 몸 깨끗하여 가없이 두루 비치느니
일천의 강에 물이 있으니 일천의 달이 나투고
일만리에 구름 한 점 없으니 푸른 하늘 끝이 없도다.

저 노사나불이나 아미타불은 보신불이며,
석가모니부처님은 화신불입니다.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변화하여 나타난 것입니다.
본래의 진짜 부처님인 법신은 비로자나 부처님입니다.
원력으로 화한 보신불이나 화신불은
진짜 부처님이 아닙니다. 달밤에 여러 개의
그릇에다가 물을 떠놓으면 그릇마다 달이 비치듯
화신불과 보신불은 단지 인연에 따라 나투는
부처님입니다. 진짜 달은 하늘에 있을 뿐입니다.
이것을 깨치기 위해서 우리가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부처님을 내 속에 두고 있으면서
가짜 부처를 나무나 돌덩이로 깎아 놓고
‘부처님 복 주시오’하고서는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네 속에 있는 부처를 깨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마음 속의 번뇌를 없애면 자신 속에 있는
진짜 부처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생각 속에 갖추어져 있는 부처님을
발견하는 것은 영원하고 변함이 없는 큰 행복입니다.
이것은 오직 내 자신이 이룰 수 있는 것이요,
남이 이루어지게 만들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내 자신만이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오직 그것을
이룩하는 방법을 일러 줄 뿐입니다.
우리 모두 번뇌에서 벗어나 내 속에 있는
참된 부처를 찾아서 영원하고 참된 행복을
다같이 이루도록 정진에 정진을 더해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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