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봉스님에게 보내는 서간문(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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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09-13 10:55 조회7,985회 댓글0건본문
■ 번역 ■
편지 잘 받았습니다.
대법체후 수시로 편안하시며 사내 제절이 두루 태평하시다니 반갑습니다. 문제(門弟)는 근근히 약한 몸을 유지하오니, 무어라 말씀드려야 하겠습니까. 편지로 보이신 뜻을 잘 알았습니다.
종문(宗門)의 흥폐(興廢)와 불법의 융체(隆替)는 법을 주관하는 이〔主法人〕1)로서 근심과 염려가 없을 수 없는 것이지만, 이 역시 우리들이 스스로 지어 스스로 받는 한 건의 일이라 번민하고 탄식한들 어쩌겠습니까.
창수(昌守)2)가 와서 비록 기쁘게 반겼지만, 여기의 생활은 심히 곤궁해서 여름에는 감자 농사와 여러 가지 운력(運力)3)이 실로 참아내기 힘듭니다. 도를 배우려 하면 본사 극락고회(極樂高會 : 현 통도사 극락암)만 못할 것이니 이 점 양해하여 주십시오.
보내 주신 원운(原韻)을 읽어보니, 저절로 읊조리는 입에서 향기가 생깁니다. 제(弟)는 본래 시를 잘 짓는 솜씨도 못 되는 데다가 요즈음 정신이 피곤하여 문자가 감퇴되고 또한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를 보내신 뜻이 감사해서 삼가 시원치 않은 글을 지어 올리오니, 한 번 보고 웃으십시오.
티끌 같은 시방 세계가 눈앞에 펼쳐져
문득 깨달으니 이 몸이 불대(佛臺)에 앉아 있구나.
태허공엔 고금(古今)이 끊어졌고
이 도량 속에는 가고 옴이 없네.
아는 것 옅은데 헛된 이름 누(累)되어 부끄러우니
오직 바라건대 풍년 들어 태평년월 오기를
천리 고향 본래 마음 그대가 얻었으니
비단 창가에 몇 번이나 찬 매화를 보았소.
영축산엔 이미 꽃이 피었다지만
오대산엔 아직도 눈이 가득하다오.
산과 물 다르다 말하지 마오
해와 달 떠오름을 다 함께 보리.
달리는 말 채찍질하고
소 먹이는 사람은 고삐를 당기네.
깊은 밤 들려오는 비바람 소리
정좌(靜坐)한 채 뜰에 핀 매화를 애석해 하네.
기축(1949년) 3월 26일
한암
■ 原文 ■
謹承審 大法體候 隨時萬安하고 寺內諸節이 俱爲泰旺하니 伏慰區區且祝이로다 門弟는 僅保劣狀이니 何足奉提잇가 就告 示意謹悉이로되 而宗門興廢와 佛法隆替는 主法人이 不無憂慮로되 而亦是吾�之自作自受之一件事也라 悶歎奈何오 昌守之來에 雖曰喜迎이나 鄙院生活이 甚困苦하야 夏間藷農諸般運役을 實難忍耐요 且學道聽受에 元不如本寺極樂高會也라 以此諒燭焉이라 惠送原韻讀之에 不覺牙頰生香이라 弟는 本不善手로되 而近日에 精神昏첐하고 文字衰落이요 且無生意라 然感其送意하야 謹構荒辭하야 以呈一笑焉하노라
十方塵刹眼前開하니 �覺此身坐佛臺로다
太虛空裏絶今古요一道場中無去來로다
自慙識淺虛名累니惟願年豊泰運回하소서
千里鄕心君已得하니綺窓幾看着寒梅오
靈鷲已花開어늘雪猶滿五臺요
莫道溪山異요同看日月來라
走馬加鞭去하고牧牛把鼻回라
夜聞風雨急하니靜坐惜庭梅로다
己丑(1949년) 三月 二十六日
門弟 漢岩 謝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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