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봉스님에게 보내는 서간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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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01-21 13:39 조회6,639회 댓글0건본문
■ 번역 ■
편지를 받자마자 마침 스님께 가는 인편(人便)이 있는데 그 사람이 서서 재촉하기에 대략 사연만 적고 세속에서 하는 인사말은 줄입니다.
편지의 말씀대로 흉금(胸襟) 두 글자가 걸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 당연하고 정답습니다. 그러나 증거가 있기 때문에 괜찮으니 그대로 쓰십시오.
고시(古詩)에 확 트인 흉금이 명월청풍(明月淸風) 같다는 구절이 있고, 또 암두(巖頭)1)와 설봉(雪峰)2) 두 큰 스님이 귀산(鼈山)에 갔다가 눈에 길이 막혔을 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설봉은 매일 좌선을 하고 암두는 계속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설봉이 참다 못해 “사형이여, 일어나시오.” 하고 깨웠습니다.
암두가 일어나서 물었습니다.
“왜 그러시오?”
설봉이 말하였습니다.
“금생에 편하게 지내지 마십시오. 문수(文邃)와 함께 행각하면서 도처에 누를 끼치고, 오늘 사형과 함께 여기에 와 보니 또 잠만 자는군요.”
암두가 할(喝)을 한 다음 말했습니다.
“잠이나 자시오.”
그러자 설봉이 스스로 가슴을 치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실로 마음이 편안하지가 않습니다.”
암두가 말하기를,
“만약 그렇다면 그대의 견해를 낱낱이 말해 보라. 옳은 곳은 그대에게 증명해 주고 옳지 못한 곳은 다듬어 주리라.”
설봉이 말했습니다.
“내가 처음 염관(鹽官)3)에게 갔을 때, 염관이 색(色)과 공(空)의 이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들어갈 곳을 얻었습니다.”
그러자 암두가 말하였습니다.
“이로부터 30년 뒤에 행여라도 잘못 이야기하지 말라.”
“또 동산(洞山)4)의 오도게(悟道偈)인 ‘바야흐로 여여(如如)에 계합하리라.’라는 구절로 인해서 들어간 곳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암두가 말하였습니다.
“그렇게 알아서는 자기의 구제도 철저하지 못하리라.”
설봉이 또 말하였습니다.
“나중에 덕산(德山)5)에게 한 방망이 맞고 활연히 통 밑이 빠지는 것 같았소이다.”
그러자, 암두가 할을 하면서 말하습니다.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문으로 좇아 들어오는 것은 집 안의 보배가 아니니라.”
설봉이 말하습니다.
“그 후엔 어찌해야 됐습니까?”
암두가 말했습니다.
“그 후에 만약 큰 가르침을 펴고자 한다면, 일일이 자기의 가슴에서 흘러나와서 나와 함께 하늘을 덮고 땅을 덮게 해야 한다.”
설봉이 이 말 끝에 크게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연기(緣起)들이 모두 다 증명되는 것입니다. 이 흉금이 능히 넓기로는 천지를 포용하며, 세밀하게는 가는 티끌 속에 들어가서 가히 생각할 수 없는 큰 해탈 경계를 구비(具備)한 것이오니, 양지하소서. 말이 길어져서 이만 줄이오니 다만 형께서 내내 만안(萬晏)하시기 빕니다.
더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추신 : 오라고 하신 말씀은 말할 수 없이 기쁘오나 오는 가을까지는 이곳에 있기로 작정하였사오니 그리 아시옵소서.
기사(1929년) 음 9월 초이튿날
한암중원 올림
■ 原文 ■
惠翰이 來付하자 便이 有하야 立促故事緣만 적고 世諦上例套난 置之하나이다.
示意와 如히 胸襟二字가 둘니능거 갓씸늬다. 그런말삼은 하시능것이 當然하고 情답심늬다. 然이나 證據가 有한 故 無妨하오니 그대로 寫하십시요.
古詩에 灑曠胸襟이 明月淸風之句가 有하고 또 巖頭與雪峰 二大老 在鼈山阻雪하야 雪峰은 一向坐禪이어늘 岩頭는 只是打睡한데 峰曰 起來師兄이라하니 頭曰 作큯오 峰曰 今生不着便하소 共文邃行脚에 到處帶累러니 今日與師兄到此 又只管打睡로다 頭 喝云 眠去하라 峰 自點胸云 我實未穩在로다 頭云 若如此면 據爾見處하야 一一通將來하라 是處는 與爾證明하고 不是處는 與爾�却하리라 峰云 我初到鹽官處에 見擧色空義하야 得介入處로다 頭云 此去 三十年에 切忌擧着하라 又因洞山 悟道偈하야 方得契如如之句하야 又有入處로다 頭云 若恁큯댄 自救也未徹在로다 峰云 後被德山一棒하야 豁然如桶底脫相似로다 頭喝云 爾不聞道아 從門入者는 不是家珍이니라 峰云 他後에 如何卽是오 頭云 他後에 若欲播揚大敎하야 一一從自己胸襟流出將來하야 與我로 蓋天蓋地去하라 峰이 於言下大悟하야 此等緣起를 呈爲證明이오니 此胸襟이 能廣包天地하고 細入微塵하야 具不可思議하야 大解脫境界오니 諒燭焉하소서 言之長也라 故只此하노이다 只祝兄體 來來萬晏하노라 不備謝禮
己巳(1929년) 陰 九月 初二日
弟 漢岩重遠 謝上
追 來汝之敎는 不勝欣賀로되 而來秋까지는 此處에 在하기로 作定하얏싸오니 그리아시옵쇼셔
1) 암두(巖頭, 828~887) : 중국 당나라 때의 스님. 법명은 전활(全豁), 덕산선감(德山宣鑑)의 제자. 청원문하(靑原門下) 5세.
2) 설봉(雪峰, 823~908) : 중국 당나라 때의 스님. 법명은 의존(義存).덕산선감의 제자. 청원문하 5세
3) 염관(鹽官, ?~842) : 중국 당나라 때의 스님. 법명은 제안(齊安).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제자. 남악문하(南岳門下) 2세.
4) 동산(洞山, 805~869) : 중국 당나라 때의 스님. 조동종의 개조. 법명은 양개(良价). 운암(雲岩)의 법(法)을 이었다. 청원문하(靑原門下) 4세.
5) 덕산(德山, 782~865) : 중국 당나라 때의 스님. 법명은 선감(宣鑑), 용담숭신(龍潭崇信)의 제자. 청원문하(靑原門下)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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