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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실행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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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1-10-12 19:40 조회6,5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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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실행에 있다

먼 길 와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전부터 현 조선(朝鮮)의 종교(宗敎)와 신앙(信仰) 문제에 대해서 말씀해 달라고 하는 부탁이 있었지만, 그것에 대해서 나는 어떠한 지식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릴 만한 어떠한 소재도 없습니다.

그러나 기자 여러분들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니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합니다만, 단지 “아무것도 모르므로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모르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이며, 어떠한 점을 모르고 있는지, 그리고 정말 모르는 것이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신다면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대답을 해주겠습니다. 단지 “저희들이 아무것도 모르니까”라고만 말하면 정말로 대답하기 곤란합니다.

나는 당국이 성의(誠意)를 가지고 노력을 해주신다면, 조선의 불교는 반드시 널리 확장되고 전파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불교도(佛敎徒)들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옛날 말에 ‘줄탁동시( 啄同時)’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계란이 다 부화되어 껍질을 뚫고 나올 때, 알 속의 새끼와 어미가 서로 같은 곳을 쪼아야 함을 비유한 말인데, 우리 불교가 번창하는데도 그 말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정말로 의미심장(意味深長)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항상 ‘실천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이른바 ‘심행부재구념(心行不在口念 : 마음먹고 실천하는데 있는 것이지 구호를 외치는 데 있지 않다)’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 사람들은 지식(知識)은 아주 많은데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좌선(坐禪)을 하는 사람은 좌선을 하고, 경(經)을 읽는 사람은 경을 읽고, 염불(念佛)하는 사람은 염불을 하는 등, 각자가 열심히 착실하게 그것을 실행한다면, 장소가 도시(都市)든 산중(山中)이든 간에, 보아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간에, 그리고 보아주는 사람이 많든 적든 간에 반드시 동조자(同調者)가 나타나리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했을 때 정말로 부처님의 참다운 제자(弟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실천해 가면 한 사람이 두 사람이 되고, 두 사람 세 사람씩 불교신자가 늘어간다면 불교의 번창은 걱정할 것도 없으며, 머지 않는 시간에 참 불교도가 되고 불교는 한반도(韓半島)에서 그 꽃을 활짝 피우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조금 전에 이야기했습니다만, 모두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허리띠를 꼭 조여 매고 실행에 옮기는 것입니다. 모두가 그렇게 한다면 특별히 연설(演說)이나 강의(講義)나 선전(宣傳)을 하지 않아도 자연히 불교는 번창하게 될 것입니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불성(佛性)은 누구나 있으며, 누구라도 결심하고 노력한다면 누구든지 불교신자가 될 수 있으므로 불교가 번창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세상일에 바쁜 사람들로서는 실천 수행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바쁘기 때문에 자주자주 잊어버리곤 합니다만, 그러나 항상 실천 수행을 잊지 않고 염두에 둔다면 앉아 있는 곳, 누워 있는 곳에서,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실천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선(禪)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덧붙여서 말한다면 ‘선(禪)’은 결코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만 먹고, 그것을 실천해 보면 되는 것입니다. 나의 의견이나 선에 대한 설명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선(禪) 그 자체의 본질(本質)은 결심(決心)하여 실행(實行)하면 저절로 알아지는 것입니다. 선(禪)은 본질상 가르쳐 주거나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결심하고 실천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신앙(信仰)의 대상으로서 절에 칠성각(七星閣)과 산신각(山神閣)이 있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만, 어떤 바람을 위해서 칠성각이나 산신각에 가서 기도(祈禱), 참배(參拜)하는 것도 일종의 신앙(信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산신각이나 칠성각은 불교를 외호하는 신(神)에 불과하지만, 그것들(산신각이나 칠성각)을 믿고 기도하다 보면, 자연히 부처님도 함께 믿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불교는 포용성(包容性)이 매우 커서 불교만 신앙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며, 칠성각에서 기도하든지, 산신각에서 기원하는 사이에 저절로 불교를 믿으려고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두서없이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요점은 “불교는 실행에 있다”고 말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해설■
이 글은 1935년(昭和 10년) 10월 28일 여러 잡지사 기자들이 방한암 선사를 배알한 다음, ‘종교에 대하여 말씀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암(漢岩)선사는 이들의 요청에 대하여 불교는 실천이 가장 중요함을 강조하셨다. 법어 내용을 당시 기자가 일문(日文)으로 정리하여 ≪심전개발에 관한 강연집≫(1936년 조선총독부)에 수록했는데, 이 글은 그 내용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듯이, 본디 심전개발과 관련하여 말씀한 것도 아니고, 심전개발을 위하여 하신 말씀도 아니다. 내용이 매우 좋으므로 수정 없이 그대로 법어집에 수록하고자 한다. ≪韓國近現代佛敎資料全集≫64권, pp.23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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