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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저 권두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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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1-10-06 17:33 조회6,270회 댓글0건

본문

금강저 권두언(金剛杵 卷頭言)

■ 번역 ■
비구(比丘)는 범어(梵語)이니, 많은 뜻이 포함되어 있어서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쓴다.

이것을 번역하자면 ‘깨끗하게 계행을 지킨다’, ‘번뇌를 파해 없앤다’, ‘능히 마군을 두렵게 한다’, 또는 ‘능히 여섯 감각기관의 도적을 쳐부순다’ 등의 뜻이 되고, 또는 ‘다툼을 없앤다’는 뜻이다. 다툼을 없애기 때문에 화합이요 화합하기 때문에 승보(僧寶)가 되고 인천의 복전이 되나니, 자성(自性)을 깨달아 닦으며, 중생들을 제도하며, 국가를 복되게 하고, 세상을 도우며, 불법을 도와 중생들을 교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반대로 되면 불법광명을 드날리지 못하며, 국복(國福)을 영원하게 하지 못하며, 중생을 제도하지 못하며, 자성을 깨닫지 못하며, 인천의 복전이 되지 못하며, 승보도 아니어서 필경에는 자기 하나도 구제하지 못하니 어찌 통탄하고 애석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우리 비구들은 삼가하고 부지런히 닦아 옳고 그름과 나다 너다 하는 견해를 영원히 끊고 다시는 저 성냄과 자만심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또한 항상 모름지기 선열(禪悅)에 만족하며, 겸손하여 스스로를 길러 자비와 인욕을 키우며, 지혜의 몸을 성취하여 영원히 물러섬이 없게 한다면 어찌 위대하고 통쾌한 것이 아니겠는가.

비록 그러하나 자! 한 번 말해 보라. 이것이 지혜의 몸을 성취함인가, 성취하지 못함인가. 성취하고 성취하지 못함은 접어두고 어떤 것이 지혜의 몸인가.

만고의 푸른 못 허공의 달을
몇번 씩이나 건져 줘봐야 비로소 알 것인가.


■ 原文 ■
比丘는 梵語이니 含多義故로 不譯이라 此륙爲持淨戒, 破煩惱, 能怖魔, 能破六賊이요 又云滅諍이니 滅諍故로 和合이요 和合故로 爲僧寶요 爲人天福田이니 可以悟修自性이며 可以救度衆生이며 可以福國祐世며 可以助佛揚化니라 返是則不能揚佛輝며 不能延國祚며 不能度衆生이며 不能悟自性이니 非人天福田이요 非僧寶라 畢竟에 自救不了니 豈不痛哉아 豈不惜哉아 故로 我等比丘는 愼之勉之하야 永斷是非와 人我之見하고 更不起於瞋慢하야 常須飽於禪悅하고 謙下自養하고 增長慈忍하야 成就慧身하야 永不退轉이면 豈不偉哉아 豈不快哉아 然雖如是나 且道하라 是成就慧身가 不是成就慧身가 成不成은 且置하고 如何是慧身고 萬古碧潭空界月을 再三撈�라야 始應知라.


■ 해설 ■
이 글은 ≪금강저(金剛杵)≫ 제26호(1943년 1월호)의 권두언(卷頭言)으로서, 비구(比丘)에 대한 정의를 통하여 비구로서의 본분을 강조하고 있다. 비구로서 본분을 다할 때 중생을 제도할 수 있지만, 이와 반대되었을 때 야기되는 폐해를 깊이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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