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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답 21조_제5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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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1-11-20 20:57 조회5,918회 댓글0건

본문

■ 번역 ■
제5문 : 이미 여실하게 힘을 얻었다면 반드시 깨달음이 철저〔悟徹〕해야 할 것이니, 어떠한 것이 여실하게 깨달음이 철저한 경계입니까?

제5답 : 옛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깨달아야 할 법(法)이 없거니, 만일 깨달아야 할 법(法)이 있다고 한다면 도리어 사람을 미혹시킨다.”고 하였고, 또 말씀하시기를 “깨닫고 나서 보면 도리어 깨닫지 않았을 때와 같다.”고 하셨으니, 만일 확철대오의 경지가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곧 확철대오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영운(靈雲)선사가 복사꽃을 보고 깨친 것〔靈雲桃花〕12)과, 향엄(香巖)선사가 대나무에 돌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깨달은 것〔香嚴擊竹〕13)과, 현사(玄沙)스님이 발가락을 다친 것〔玄沙�指〕14)과, 장경(長慶)스님이 주렴을 걷어 올렸던 것〔長慶捲簾〕15) 등 여러 큰 스님들이 깨쳤던 일은 모두 거짓으로 전해온 것이란 말입니까?

앙산(仰山)16)이 말하기를, “깨달음이란 없지 않으나 (말을 해 버린다면) 제2류(流)가 됨을 어찌하리오.”라고 하셨으니, (그러므로) 절반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현사(玄沙)스님이 말하기를, “감히 노형을 보니 아직은 깨닫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으니, 실로 노파심이 간절한 것이다. 여기에 이르러 깨달음에 철저한 경계가 있다고 하는 것이 옳으냐, 깨달음에 철저한 경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옳으냐, 어떻게 하는 것이 분명한 것인가. 말없이 잠시 있다가 게송을 읊었다.

해천(海天)에 밝은 달이 처음 솟아난 곳에

암벽의 원숭이 울음 그칠 때니라.




■ 原文 ■
第五問 : 旣如實得力인댄 必爲悟徹이니 如何한 것이 爲如實悟徹境界乎잇가

第五答 : 古德云하사대 明明無悟法이언정 悟法이면 却迷人이라하고 又云하사대 悟了에 還同未悟時라하니 若有悟徹境界면 便不是悟徹也라 然則靈雲桃花와 香嚴擊竹과 玄沙�指와 長慶捲簾等 諸大宗師所悟徹事는 皆傳虛也耶아 仰山云하사대 悟則不無나 爭奈爲第二頭리오하니 道得一半了也라 玄沙云하사대 敢保老兄猶未徹이라하나니 實老婆心切이로다 到這裏하야 道有悟徹境界是아 道無悟徹境界是아 如何得諦當去오 良久云 海天明月初生處에 巖岫啼猿正歇時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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