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봉사 만일암 선회 선중방함록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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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6-12-02 15:12 조회5,580회 댓글0건본문
■ 번역 ■
달마조사께서 짚신 한 짝을 남기신 후 1385년이 지난 신유(1921년) 가을 9월 상순에, 건봉사 주지 이대련, 감무 이금암, 전 주지 이운파와 산중의 모든 대중들이, 마음을 모으고 협의하여, 옛부터 내려오던 만일암 염불회(念佛會)를 폐지하고, 선회(禪會)를 신선(新設)하여 제방의 참선인을 초빙하여 참선 수도로써 국가와 사회에 복이 되는 터전을 삼으니 실로 한 시대의 성대한 일이다.
나는 내금강 장안사에 있을 때 초청을 받고 분에 넘게 이 법회를 주관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한 객승이 나에게 물었다.
“고인(古人)이 말하기를, ‘염불과 참선은 본래 둘이 아니다.’고 했는데, 이제 염불회를 폐지하고 선원(禪院)을 만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내가 말했다.
“그대는 단지 그것이 둘이 아니라는 말만 들었을 뿐, 둘이 아닌(不二) 그 뜻은 모르니, 과연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객승이 말하였다.
“무슨 뜻입니까?”
내가 말하였다.
“염불이란, 저 부처님을 염하여 청정한 세계에 태어남을 구하는 것이다. 청정한 세계가 있기 때문에 더러운 세계가 있는 것이다. (自性佛이 아닌) 타불(他佛)을 생각하여 친견하기를 구하기 때문에 자기는 애당초 범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범부와 부처가 이미 둘이요, 청정한 세계와 더러운 세계가 이미 둘이라면 좋아함과 싫어함, 취함과 버림의 마음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갖가지 차별(千差萬別)이 항상 일상의 사물 위에 나타나는 것이다. 참선자가 처음 발심할 때에 곧바로 자기 마음이 부처임을 확립하여 한 생각에 기틀을 돌이키면(방향 전환) 광겁의 무명도 곧바로 얼음 녹듯 사라질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범부와 성인, 청정함과 더러움, 좋아함과 싫어함,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다시 어느 곳에 발붙일 수 있겠는가. 이로 미루어 살펴본다면(그대의 생각대로라면), 참선과 염불의 두 가지 길은 그 거리가 마치 하늘과 땅처럼 멀어져 버릴 것이니 어떻게 하나로 만들 수가 있겠는가?”
객승이 깜짝 놀라 일어나 말하였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앞에서) ‘염불과 참선이 둘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이제 염불회를 폐지하고 선원을 만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운운한 말이 부질없는 망령된 말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다시 객승에게 말하였다.
“그 말은 망령된 말이 아니네. 그대가 실로 그 도리를 잘 모르기 때문이네. 태고화상께서 말하기를 ‘곧바로 자성미타(自性彌陀)를 생각하여 하루 종일 사위의(四威儀 : 行住坐臥) 가운데에 마음과 마음이 끊어지지 않게 하고, 생각생각이 혼매하지 않게 하되, 정밀하게 반조하여 아미타불을 생각〔念〕하는 자는 누구인가? (이렇게 觀할지니), 오랫동안 공부를 해 가면 잠깐 사이에 마음과 생각이 끊어지고 아미타불의 진체(眞體)가 뚜렷이 앞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고 하였다. 또 나옹조사가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아미타불은 어느 곳에 계시는가?
간절히 마음에 새겨 잊지 말아라.
생각이 다하고 다하여 생각없는 곳에 이르면
육문에서 항상 붉은 금빛이 방광하리라.
고 하였으니 ‘반조(返照)하여 아미타불을 생각하는 자는 누구인가?’ 이것이 ‘한 생각을 돌린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생각하고 생각하여 생각이 없는 곳에 이른다’는 것은 ‘광겁의 무명이 곧바로 얼음처럼 녹아진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곧 ‘염불과 참선이 둘이 아니다’라는 이치이다.
이 건봉사는 발징화상께서 원력으로 태어나서, 31인이 수행하여 함께 몸을 버리고 왕생한 이후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일천여 년을 흘러오는 동안 법과 도가 모두 쇠퇴하여 서방정토에 태어나기를 염원하는 자들은 모두가 소리 높여 염불하는 것을 최고의 법칙으로 생각한 나머지 모두가 자성미타(自性彌陀)의 진실된 교법(敎法)을 돌이켜 관(觀)할 줄을 모르고 있다.
보조국사께서는 ‘사랑을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불상을 관(觀)하고 부처의 이름을 외워서 오랜 세월이 흐르면, 대부분 마귀와 도깨비에게 포섭되어 엎어지고 미쳐서 정처없이 치달리어 공부가 헛수고가 된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바로 이를 지칭한 말이다. 어찌 마음 아픈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옛 스님이 말하기를, ‘천리 길을 가려면 첫 발을 바르게 내딛어야 한다’고 하였다. 불법을 배우는 사람은 맨 처음 선택을 분명히 하고 이치를 깨달아 닦아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때 만일 옛 습관을 개혁하여 바른 길을 열어 보여주지 않는다면 장차 어떻게 큰 법을 유지하여 무궁하게 전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이른바 옛날의 염불회를 폐지하고 선원으로 만든 간절한 노파심이다.”
객승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오늘로부터 자성미타(自性彌陀)를 생각하되, 반조하여 아미타불을 생각〔念〕하는 자는 누구인가? 이렇게 관하여, 한 생각 한 생각이 혼매하지 않게 한다면 그것이 선회(禪會)를 신설한 본의에 부합하는 것입니까?”
내가 말하였다.
“그만 두게, 그만 두게. 그대가 그와 같이 나에게 묻기에 나 역시 그와 같이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지 그 또한 나의 진실한 뜻이 아니네.”
객승이 말하였다.
“오롯이 생각이 끊기고 화두를 들어 마음과 마음이 끊어짐이 없게 한다면 구경(究竟)의 경지(깨달음)를 기약할 수 있습니까?”
“그만 두게, 그만 두게. 그 또한 나의 진실한 뜻〔實意〕이 아니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합일하는 것입니까?”
나는 주장자로 법상을 한 차례 치면서 말하였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이 높은 것은 높이 솟아 있고 낮은 것은 낮게 솟아 있네. 알겠는가? 만일 이를 알지 못한다면, 아래 문장의 주각을 들어라.”
조금 있다가 말하기를,
막야 명검을 비껴들고 바른 명령을 받드니
태평한 온 누리에 어리석고 사나움을 모두 베노라.
객승이 수긍하고 나갔다가, 잠시 후 이를 기록하여 주기를 청하기에 이 하나의 갈등(말)을 첫 머리의 서문으로 붙여 선중(禪衆)의 방함록으로 삼고자 이를 기록하는 바이다.
세존 응화 2949(1922년) 임술 정월 해제 후 3일
한암중원 삼가 적다
■ 原文 ■
達摩祖師 雙履存後 一千三百八十五年 辛酉 秋九月 上澣에 乾鳳寺住持李大蓮, 監務李錦庵, 前住持李雲坡와 與一山僉衆이 團心協議하야 革舊萬日庵念佛會하고 爲新設禪會하야 招諸方心學者하야 安居修道하야 以資福國祐世하니 實一代盛事也라
余自內山長安寺로 亦赴是請而濫主會席矣러니 日有一客이 問余曰 古人云하사대 念佛參禪이 本無有二어늘 今廢念佛會而爲坐禪院은 何也오 余曰 子但聞其無二之言이요 而不知其無二之意旨하니 果如何道得也오 客曰 何謂也오 余曰 念佛者는 念彼佛而求生淨界也니 有淨界故로 有穢土요 念他佛而求見일새 故로 自己元是凡夫라 凡夫與佛이 旣二요 淨界與穢土旣二면 則欣厭取捨之心이 不得不生하고 而千差萬別이 常現於日用事物上矣라 參禪者는 初發心時에 卽建自心是佛하야 一念回機면 曠劫無明이 當下에 氷消則凡聖, 淨穢, 欣厭, 取捨之心이 更何處安着乎아 推此觀之컨대 參禪念佛의 兩箇路頭는 相去如雲泥之遠이니 如何知會得成一耶아 客이 瞿然而起하야 曰 聽師之言호니 念參無二之云云은 是妄也로다 余曰 此言은 非妄也라 子實不知其道理也니라 太古和尙이 云하사대 直下에 念自性彌陀하야 十二時中四威儀內에 心心相續하고 念念不昧하야 密密返觀念者는 是誰오 久久成功이면 則忽爾之間에 心念斷絶하야 阿彌陀佛眞體가 卓爾現前이라하시고 又懶翁祖師寄妹氏書에 云하사대 阿彌陀佛이 在何方고 着得心頭切莫忘하라 念到念窮無念處면 六門常放紫金光이라하시니 返觀念者誰오 非一念回機乎아 念到念窮無念處는 非曠劫無明을 當下에 氷消乎아 此乃念佛參禪無二之意也라 蓋此乾鳳寺는 自發徵和尙願力受生하고 三十一人捨身往生後로 至今千有餘年히 法道衰廢하야 發淨土願者는 擧皆以高聲稱佛로 爲極則이요 而全昧其返觀自性彌陀之眞實敎法이라 普照國師 所謂 將見愛之情하야 觀彼佛相하고 念彼佛名하야 日久歲深에 多爲魔魅所攝하야 顚狂浪走하야 虛勞工夫者가 此也니 豈不痛傷이리오 故로 古德云하사대 欲行千里댄 初步要正이라 하시니 學道人이 最初頭에 不可不決擇分明하야 悟理應脩也니라 當此之時에 若不改革舊習하고 開示正路면 則將何以維持大法하야 流通無窮哉리오 此所謂撥 舊念佛會하고 爲坐禪院之老婆心切也니라 客曰 然則但從今日去로 念自性彌陀호되 返觀念者是誰오 念念不昧면 則其可副於新設禪會之本意耶아 余曰 住住하라 對子恁큯問에 不得不恁큯答이요 本非余之實意也니라 客曰 凝然絶念하고 提옜話頭하야 心心無間하야 以期究竟이 可乎아 余曰 住住하라 亦非余之實意也니라 客曰 恁큯則如何得諦實相應去오 余以柱杖으로 打卓一下云 金剛山一萬二千峰이 高底高聳이요 底低底聳이라 會큯아 若未會댄 且聽下文注脚하라 良久云 橫按큹죕全正令하니 太平�宇斬癡頑이로다. 客이 唯唯而退라가 少選에 請書着上來하야 打葛藤一絡索하야 弁於卷首하고 而以爲禪衆芳啣錄하야 錄之하노라
世尊應化 二千九百四十九年 壬戌 元月 解制後 三日
寒巖重遠 謹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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