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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경허화상 행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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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7-04-28 14:07 조회5,331회 댓글0건

본문

선사 경허화상 행장(1)

 

 

번역

금강경에 이르기를, “만약에 돌아오는 세상 후오백세에 어떤 중생이 이 경을 듣고 신심(信心)이 청정해지면 곧 실상(참된 지혜)을 내게 될 것이니,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가장 희유한 공덕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대혜화상이 이르기를, “만일 굳센 사람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을 것 같으면 불법이 어찌 오늘에 이르렀으리오.”라고 하였으니, 대개 용맹스런 뜻을 발하여 법의 근원에 사무친 이가 말법(末法)에도 없지 않을 것이므로 불조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요, 또한 그러한 사람이 드물어서 혜명이 보존되기 어렵기 때문에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이니, 누가 능히 여기에서 대장부의 뜻을 갖추어 철저히 자성을 깨달아, 그 제일 가는 공덕을 성취하여, 큰 지혜 광명의 뜻으로 저 후오백세 후까지 광대하게 유통하게 하리요. 이것을 이은 이가 바로 나의 선사(先師) 경허화상이 그런 분이시다.

화상의 휘(법명)는 성우요, 어려서 이름은 동욱이며, 경허는 그 호이다. 성은 송씨요, 여산의 후손이다. 부친의 휘는 두옥(斗玉)이며, 모친은 밀양 박씨이다. 철종 8년 정사년 424일에 전주 자동리에서 탄생하셨다. 분만 후 3일까지 울지 않다가 목욕을 시키자 비로소 울음소리를 내니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일찍이 부친의 상을 당하고 9살 때에 모친을 따라 상경하여 광주군 청계사에 들어가 계허스님을 은사로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았다. 그리고 형이 공주 마곡사에서 득도하니, 모두 그 모친이 삼보(三寶)1)에 귀심(歸心)하여 염불을 정성스럽게 한 까닭에 두 아들이 출가하게 된 것이다.

나이는 어렸으나 뜻은 큰 사람 못지 않아서 비록 곤궁한 일에 처하더라도 싫어하는 마음이 없이 나무하고 물 긷고 밥을 지어 스승을 공양하였다. 나이 14살이 되도록 학문을 할 겨를이 없다가 마침 한 선비가 와서 함께 여름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 선비가 잠시 우거(寓居)2)하면서 소일거리로 곁에 불러 앉히고 천자문을 가르쳐 보니 배우는 대로 곧바로 외웠다. 다시 통감과 사략(史略) 등의 글을 가르쳐 보니 하루에 대여섯 장씩 외우기에 감탄하며 말하였다.

이 아이는 참으로 비상한 재주로다. 옛 사람이 이른바, 천 리를 달리는 말이 백락(伯樂)3)을 만나지 못하면 피곤하게 소금 짐이나 끈다더니, 뒷날에 반드시 큰 그릇이 되어 모든 사람들을 제도하리라.”고 하였다.

얼마 후 은사인 계허스님이 환속하게 되자, 은사가 그 재주와 학문이 성취되지 못할 것을 애석하게 여겨 계룡산 동학사 만화화상4)에게 추천하는 글을 써서 보내니, 만화화상은 당세의 큰 강사였다. 경허의 기상이 영특하고 빼어남을 보고 기뻐하며 붙들어 가르치니, 몇 달이 안 되어 글을 잘 짓고 교의(敎義)를 토론하며, 일과(日課)의 경소(經疏)를 한 번 보고 다 외워 마치고는 하루종일 잠만 잤으나, 그 이튿날 논강(論講)할 때에는 글뜻을 모두 해석하는 것이 마치 장작을 쪼개고 촛불을 켜는 것과 같았다. 강사가 잠이 많은 것을 꾸짖고 그 재주를 시험하고자 하여, 특별히 원각경가운데 소초()까지 대여섯 장 내지 십여 장을 일과로 정해 주어도 여전히 자며 여전히 잘 외우니, 대중들이 모두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고 감탄하였다. 이로부터 재주와 이름이 널리 드러나고 영남과 호남의 강원에서 참학하니, 학문이 날로 진취되고 더욱 널리 배워서 유교와 노장학까지도 정통하지 않음이 없었다.

천성이 소탈하고 활달하여 밖으로 꾸밈이 없는지라, 무더운 여름에 경을 볼 때에 대중들은 모두 옷을 입고 앉아서 땀을 이기지 못하는데, 혼자서 훌훌 벗어버리고 태연자약하여 형상과 거동에 마음 쓰지 않는 것이 한결같이 어리석은 듯하였다. 강사가 그를 보고는 문인들에게 말하기를, “참으로 대승의 법기(法器)로다. 너희들은 도저히 미칠 수 없느니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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