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정립해야 한다(6)_대담/鮮于 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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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6-07-30 09:11 조회7,053회 댓글0건본문
〔6〕낙욕성(樂欲性)은 발원(發願)·입지(立志)의 의미
스님 : 기욕(嗜欲)이 심자(深者)는 천기천(天機淺=莊子)이란 말과 같이 기욕(嗜欲)이 많은 사람은 천리(天理)와는 먼 것이고 기욕(嗜欲)이 적은 사람은 도(道)에 가까운 것이지요. 공자(孔子)의 말씀에 소년시절엔 혈기(血氣)가 미정(未定)하므로 색(色=여자)을 경계해야 하고, 장성(長成)해서는 혈기가 강장(强壯)하므로 싸움을 경계해야 하며, 늘그막엔 혈기가 이미 쇄했기 때문에 탐심(貪心)을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탐심(貪心)은 기욕(嗜欲)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로 보아 선우(鮮于) 선생은 수양(修養)이 깊어졌다고 볼 수 있지요.
고인(古人)의 시(詩)에
“인정열진두전백(人情閱盡頭全白)이요 세미상래치이한(世味嘗來齒已寒)”이라는 말이 있는데, 온갖 인정(人情)을 다 지내고 보니 머리는 허옇게 되었고 세상만사를 다 겪고 보니 이가 시리게 되었다는 뜻이지요. 기욕(嗜欲)과 낙욕(樂欲)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낙욕은 이지(理智)에 속하므로 기욕(嗜欲)이 없다고 해서 낙욕성(樂欲性)까지 없다면 일체성인(一切聖人)들이 꾸짖는 것입니다. 낙욕성은 발원(發願)이나 입지(立志)를 의미합니다.
선우 : 그러니까 성인(聖人)이 가장 욕심이 많다는 얘기입니까?
스님 : 그렇지 않습니다. 경중(輕重)을 달리해야지요. 세상욕심이 희박한 이는 좋은 사람이지만 낙욕성(樂欲性)이 없는 사람은 천치, 바보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양자를 구별해야 합니다.
제 경우를 보면 저의 선고(先考)께서 17세부터 독립운동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늘 정치문제를 가지고 저를 가르치셨습니다. 제가 17~18세가 되었을 때 선고(先考)께 “소강절(邵康節)은 소인(小人)입니까, 군자(君子)입니까?”하고 여쭈었더니 “송조(宋朝) 육군자(六君子) 중의 한 분이시다”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제가 또 말씀드리기를 “그러면 그의 학설이 거짓말이 아니겠지요” 하고는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오종(五種)사업의 종별(種別)을 들어 “영위계구(寧爲鷄口)이언정 무위우후(無爲牛後=작아도 닭의 입이 되는 것이 낫지, 커다란 소 궁둥이가 되지 말라는 뜻)라는 말이 있듯이 가다가 못 갈지언정 공자(孔子)의 불세지사업(不世之事業)을 따르겠습니다”고 하니, 선고(先考)께서도 막지 못하셨습니다. 이처럼 낙욕성(樂欲性)은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것입니다.
선우 : 성인(聖人)이 중생을 제도한다거나 계몽할 때 너무 높은 경지에서 한다면 거부반응을 일으킬 것같습니다. 성인(聖人)이 중생의 차원인 밑바닥까지 내려와 중생과 고락(苦樂)을 같이하며 제도(濟度)할 때 가능할 것 같은데요…….
스님 : 물론 그렇지요. 한번 부정을 거친 긍정이어야 더욱 철저한 긍정이 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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