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懸吐譯解 金剛經』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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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3-11-19 10:38 조회7,702회 댓글0건본문
『懸吐譯解 金剛經』序
古人이 말하기를 “有翼으로써 飛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無翼으로써 飛한다는 말은 일찍이 듣지 못했으며, 有知로써 知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無知로써 知한다는 말은 일찍이 듣지 못하였다.” 하니 無翼의 飛가 眞飛라면 無知의 知가 眞知인 것이다. 마치 바다가 風動波生한다 해서 덜 젖지도 않고 風靜浪息한다 해서 더 젖지도 않는 것과 같이, 이 眞知의 本體는 凡夫에게 있다 해서 모자라지도 않고 聖人에게 있다 해서 남음이 있는 것도 아니다. 古人이 知之一字가 衆妙의 門이라 한 것도 바로 이것을 指摘한 말이니 所謂 萬象之中에 獨露身이라는 것이다. 이 般若智를 드러낸 五家解金剛經은 이미 諸祖의 稱述함이 있은 즉 今日의 臚列을 기다릴 게 없다.
그러나 千有餘年 동안 傳寫해 오면서 脫衍倒誤가 너무도 많아서 脈絡이 不通하고 魚魯를 難辨處가 一二군데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李朝初에 涵虛和尙이 說誼로 注脚을 함과 同時에 脫․衍․倒․誤處를 一一이 指摘하여 卷尾에 붙여서 거의 他途에 涉하지 않고 바로 寶所에 이르게 한 것이다.
이제 譯解하여 다시 編集함에 있어서는 涵虛和尙의 校正本을 依據해 모조리 修正하고 間或 難解處가 있는 것은 自意로 略干의 注脚을 붙여 두기도 했다.
達人分上엔 畵蛇添足의 叱笑를 免치 못하려니와 만일 學究途上에 이를 因해 望梅止渴의 一助가 된다면 저 無知의 知인 佛祖의 慧命이 이 世上에 떨어지지 않으리라고 믿는 바이다.
應化 三千八年 辛酉 壯月 日
五臺山人 呑虛 삼가 씀
【번역】
옛 사람이 말하기를, “날개가 있어 난다는 말은 들었지만 날개가 없이 난다는 말은 일찍이 듣지 못했으며, 앎이 있음으로써 안다는 말은 들었지만 앎이 없는 것으로써 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고 한다. 날개 없이 나는 것이 참으로 나는 것이라면 앎이 없는 앎이 참다운 앎이다. 마치 넓은 바다란 폭풍이 일고 거센 파도가 일어난다 해서 덜 젖지도 않고 바람이 고요하고 물결이 잔잔하다 해서 더 젖지도 않는 것과 같이, 참다운 앎의 본체는 범부에게 있어 모자라지도 않고 성인에게 있어 남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옛 사람이 “앎이라는 한 글자는 많은 오묘의 문”이라 말한 것도 바로 이를 가리킨 말이다. 이른바 “일만 형상 가운데 홀로 몸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반야지(般若智)를 드러낸『오가해금강경』은 이미 여러 조사들께서 말씀하신 바 있기에 여기에서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러나 천여 년 동안 베껴 전해오면서 오자, 탈자와 차례가 뒤바뀐 문장이 너무도 많아서 문장의 맥락이 통하지 않고, 무슨 글자인지 알 수 없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이 때문에 조선 초기에 함허(涵虛)스님이 설의(說誼)로 주각을 부침과 아울러 오자, 탈자와 차례가 뒤바뀐 문장이 있는 부분들을 하나하나 지적하여, 이를 책의 말미에다 붙여줌으로써 거의 다른 길로 건너지 않고, 곧바로 보배가 있는 곳에 이르도록 마련해 주었다.
이제 이를 번역하여 다시 편집함에 있어서 함허스님의 교정본에 의하여 모두 수정하고 간혹 이해하기 어려운 곳은 나의 뜻으로 약간의 주해를 붙이기도 하였다.
이미 깨달은 자의 입장에서는 뱀을 그리면서 있지도 않는 뱀의 발을 그렸다는 질타를 면키 어렵겠지만, 배우는 자의 처지에서는 이의 번역으로 인하여 매실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목마름을 그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앎이 없는 앎인 부처와 조사의 혜명(慧命)이 이 세상에 떨어지지 않으리라고 믿는 바이다.
불기 3008년(1981) 신유 8월 일
오대산인 탄허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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