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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 윤재승 사장 (법보신문)2012.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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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2-11-09 11:36 조회10,2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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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 윤재승 사장
불자 지적수준 높일 교양서 시리즈 발간
2012.11.07 09:47 입력 | 2012.11.07 14:28 수정

10년 출가생활 출판에 도움
32년간 불서 700여종 간행

 

 

▲윤재승 사장은 “불자라면 누구나 30분은 불교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원도 진부 산골의 살림살이는 넉넉할 수 없었다. 형님이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진학을 미루게 됐다. 2년간 아버지 일을 도우며 기다렸지만 길은 열리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한문공부를 핑계로 집을 떠나 월정사를 찾았다. 이때 나이 열다섯이었다. 그곳에서 탄허 스님에게 경을 배우던 중 ‘발심수행장’을 보다가 절로 신심이 일어났고, 입산 2년 만에 “아! 이렇게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에 계를 받고 출가했다.


그리고 월정사에서 출가수행자로 살면서 탄허 스님을 만나러 오는 출판사, 잡지사, 신문사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됐다. 그것이 훗날 책 만드는 인연으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책 읽기를 좋아했던 그에게 책은 매력적인 작품이었고,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느새 동경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10년의 출가생활이 이어지던 어느 날, 그만 출가 인연이 끝나 절을 떠났다. 그는 동경의 대상이었던 책 만드는 일을 업으로 택했다.


민족사 윤재승(창화, 暢和) 사장. 그는 1980년 5월 나이 스물아홉에 “불교지식을 다양하게 전달하겠다”는 원을 세우고 출판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첫 출발부터 험난했다. 불교서적으로 첫 출판했던 ‘불교의 사회사상’이 빛도 보지 못한 채 그대로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다. 불자들의 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후속작도 준비하고 있었으나, 더 이상 뜻을 펼 수 없었다.


그래서 택한 일이 일본 학술서적 리프린트였다. 말 그대로 판권도 없는 일명 ‘해적판’을 원서 그대로 펴냈고, 당시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했던 소장학자들을 중심으로 일정정도의 수요가 있었다. 그렇게 출판사 명맥을 이어가면서 조금씩 여유자금이 발생한 덕분에 다시 단행본을 펴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해적판을 번역해 한글로 선보이는 작업을 병행했고, 그것들이 축적되면서 ‘깨달음총서 시리즈’가 탄생했다. 본래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시, 소설, 수필 등에 별 관심이 없던 그는 본격적으로 학술서 출판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술서 출판 고집은 민족사의 경영을 더욱 악화시켰다. “학술서는 3년 동안 1000권 정도 판매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래도 빛을 내서 책을 냈는데, 90년대 중반에 이르니 사채만 1억5000만원에 달했습니다.” 결국 98년에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8명이던 직원을 절반으로 줄이고, 학술서 출판 위주에서 탈피해 30% 정도는 대중서적을 출간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결심하고 난후 5천권을 팔아줄테니 책을 내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영세한 출판사 입장을 고려할 때 충분히 마음이 흔들릴 법한 유혹이었으나, ‘출판은 곧 영혼을 담은 집을 만드는 일’이라는 신념으로 살아온 출판인으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필자 부재가 공부하는 계기
불서출판은 ‘평생 해야할 일’


그렇게 32년 동안 민족사를 지켜오면서 펴낸 책이 어느 덧 700종에 달한다. 그 중 1991년 출간한 성본 스님의 ‘중국 선종의 성립사 연구’는 그가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는 책이다. “초판 1000권을 찍고 2000년에 2쇄를 찍었으니 경제성은 전혀 없었지만, 이 정도로 좋은 원고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정말로 신바람 나게 일하면서 만든 책이지요.”


경제적 손실을 감내하더라도 의미 있는 책을 만드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민족사가 아닌 다른 곳에서 펴낸 책 중에서도 ‘불타의 세계’, ‘생활의 발견’, ‘도연초’, ‘논어’ 등은 그가 출판인으로, 또 한 인간으로 살아오는데 큰 힘이 됐다.


대부분 출판인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으나, 그가 뼈저리게 느끼는 근본적인 한계는 따로 있다. 불교를 보다 쉽게 대중에게 전달할 만한 글을 쓸 수 있는 필자의 부재다. 이는 곧 그로 하여금 다른 출판인들과 달리 연구하고 글 쓰고 책 내는 출판인이 되게 했다. 그렇게 직접 글 쓰기를 시작하면서 펴낸 책이 2002년 출간한 ‘왕초보 불교박사 되다’ 이다. 책 내용의 90%를 직접 썼고 독자들도 꾸준히 찾아 지금까지 14쇄를 인쇄했다.


하지만 불서출판을 어렵게 하는 더 큰 장애물은 책을 소홀히 하고 경시하는 불자들의 인식이었다. “지식사회에서 무식은 곧 불통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그릇된 선불교 문화가 책을 보지 않고 경시하는 풍토를 조장한다고 판단했다. “옛 조사들은 물론 근현대 선지식 대부분이 많은 책을 보고 박학했습니다. 선불교에서 책을 보지 말라는 것은 좌선할 때 보지 말라는 것이지, 책을 멀리하라는 말이 아닌데 잘 못 이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선 공부에 천착하게 됐다. 그동안 선과 관련해서 적지 않은 논고를 펴낸 것도 그런 이유였다. ‘선원에서 정말 책을 보지 않았는가’를 고민하면서 논문도 준비 중이다. “한국 선불교의 오류, 오판, 착각, 혼돈을 바로잡겠다”는 생각뿐이다. 그래서 “출판을 통해서 불교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를 화두 삼아 직접 연구하고 글을 써온 그는 내년부터 매년 논문을 한편씩 쓸 계획이다. 인식전환의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다.


윤 사장에게는 지금 한 가지 희망사항이 있다. 몇 년 전 시작했다가 중단된 ‘영혼의 작은 책’ 시리즈 발간이다. “불자들이 누구나 최소한 30분 정도는 다른 사람에게 불교를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의 지적 수준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불교교양문고’다. 하지만 수필을 읽듯 접근할 수 있는 교양서 시리즈임에도 불자들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 그래도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고 교양이 될 만한 책을 40권 정도까지는 시리즈로 펴낼 계획이다. 불자들의 지적수준이 향상될 때 불교가 사회에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열다섯에 입산해 17세에 출가하고 27세에 환속해 스물아홉부터 시작한 출판 일을 32년간 이어오면서 언제나 그랬듯 그는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동안 삶이자 직업이 된 불서출판은 이제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매체라는 자부심을 갖고 하는 ‘평생 해야 할 일’이 되었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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