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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스님 친견하는 마음으로 기념탑 세워”(불교신문)2012.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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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2-10-30 09:37 조회10,6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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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스님 친견하는 마음으로 기념탑 세워”
천장암서 ‘열반 100주기 기념탑’ 제막식…경허·만공스님 ‘생가’ 위치 확인
[0호] 2012년 10월 28일 (일) 13:17:03 이시영 충청지사장 lsy@ibulgyo.com
   
경허선사 열반 100주년 기념사업회와 경허선사 열반 100주년 기념탑 건립 추진위원회는 10월27일 기념탑 제막식을 개최했다.

구한말 쇠락한 선풍(禪風)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한국불교 중흥의 기초를 놓은 경허스님의 열반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경허선사 열반 100주년 기념사업회(회장 수덕사 주지 지운스님)와 경허선사 열반 100주년 기념탑 건립 추진위원회(위원장 천장암 회주 옹산스님)는 10월27일 오후2시 기념탑 제막식 및 선사상 토론회를 거행했다.

이날 행사에는 덕숭총림 방장 설정스님, 금오문도회 운영위원장 설조스님, 제11교구 본사 불국사 주지 성타스님, 각원사 주지 대원스님, 성완종 국회의원, 이명수 국회의원, 이완섭 서산시장, 한달우 서산경찰서장 등 사부대중 300여명이 동참했다.

   
수덕사 방장 설정스님이 기념탑에 헌화하고 합장하고 있다.

수덕사 기획실장 효성스님의 사회로 진행된 기념탑 제막식은 삼귀의, 반야심경, 제막, 헌향, 헌다, 헌화에 이어 경허스님 선양을 위해 노력한 최인호 작가, 김진태 검사, 이은윤 전 중앙일보 기자에게 공로패가 수여됐다. 새벽부터 전국적으로 내리던 비는 행사가 시작된 후 잠시 멈췄다.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스님은 법어에서 “일찍이 경허선사는 모든 학문을 섭렵하시고 사교입선(捨敎入禪)하여 처절한 정진 끝에 대오(大悟)를 이루고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증득하셨다”면서 “시비와 이해득실을 초월했을 뿐 아니라 범성(凡聖)과 승속, 계율에서도 초탈한 해탈진인(解脫眞人)”이라고 설했다.

이에 앞서 천장암 회주 옹산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경허 대선사는 정법이 쇠퇴한 시대에 선풍을 진작해 선불교 정신을 되찾고 간화선 명맥을 살려낸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로 추앙받는 분”이라면서 “정작 스님을 기념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 큰스님을 친견하는 마음으로 기념탑을 세우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제막식에서는 경허스님 선양을 위해 노력한 최인호 작가, 김진태 검사, 이은윤 전 중앙일보 기자 등에게 공로패가 수여됐다.

제막식에 참석한 내빈들의 기념사와 축사도 이어졌다.

제11교구 본사 불국사 주지 성타스님은 추모사에서 “스님이 정진하셨던 좁은 방 앞에 서고 보니 떨리고 치열한 구도정신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며 “후학들은 선불교를 활짝 꽃피우면서 큰스님의 의발(衣鉢)에 보답할 것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덕숭총림 수덕사 주지 지운스님은 “기념탑을 제막하게 되어 기쁜 마음 금할 수 없다”면서 “마음으로 함께하는 경허대선사 성역화의 첫 삽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염원이 있다”는 내용의 기념사를 했다.

이완섭 서산시장은 축사에서 “한국불교의 법맥이 끊어지고 정법을 찾아보기 힘든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경허스님이 출현했다”면서 “우리글의 가슴에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산 천장암 회주 옹산스님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제막식이 끝난 뒤에는 자리를 옮기지 않고 열반 100주년 기념 ‘제1회 경허의 생애와 선사상 토론회’가 진행됐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수덕사 방장 설정스님, 금오문도회 운영위원장 설조스님, 제11교구 본사 불국사 주지 성타스님 등 200여명의 대중이 자리를 끝까지 함께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최병헌 서울대 명예교수, 이종찬 동국대 명예교수, 이은윤 전 중앙일보 기자, 허유 한서대 교수, 혜월스님 등은 경허스님이 불교는 물론 한국역사에 드문 발자취를 남긴 거목(巨木)이라고 평했다.

한편 경허스님이 깨달음을 이룬 후 보림하며 제자들을 지도한 인연이 있는 천장암은 앞으로 경허대선사를 선양하기 위한 불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우선 천장암과 수덕사를 잇는 ‘깨달음의 길’ 조성에 나선다.

   
수덕사 방장 설정스님이 법어를 내리고 있다.

경허대선사는 물론 혜월ㆍ수월ㆍ만공ㆍ한암 스님 등 제자들이 운수행각(雲水行脚)에 나설 때 유서 깊은 길이다. 경허대선사 열반 100년이 흘렀지만, 그 길을 다시 걸으며 스님의 수행정신을 점검하는 인연을 맺게 해줄 계획이다.

이와 함께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의 생가를 찾기 위한 작업도 본격화 하고 있다. 천장암은 문헌조사와 현지 방문 등을 통해 경허스님의 생가와 만공스님의 생가 위치를 확인했다. 본지는 추후 이 부분을 상세 보도할 계획이다.

   
제막식 후 열반 100주년 기념 ‘제1회 경허의 생애와 선사상 토론회’가 진행됐다.

■ 천장암과 경허대선사

1879년 11월15일 활연대오한 경허스님은 이듬해인 1880년 서산시 고북면 천장암에서 보림하며 법을 설했다. 경허스님은 1882년 천장암에서 수월스님과 혜월스님에게 <수심결(修心訣)>을 강설했고, 1884년에는 동학사에서 만난 제자 만공스님을 천장암에 보내 정진하게 했다.

1889년 해인사로 주석처를 옮긴 경허스님은 범어사, 통도사, 송광사, 화엄사 등에 선원을 개설하며 선풍을 진작시켰다. 1903년 가을 천장암으로 돌아온 경허스님은 이듬해 7월15일 만공스님에게 전법게를 전한후 천장암을 떠났다.

이후 경허스님은 오대산 월정사, 고성 건봉사, 안변 석왕사를 거쳐 장발유복(長髮儒服)하고 북방으로 몸을 감췄다가 1912년 원적에 들었다. 따라서 천장암은 경허스님이 깨달음을 성취한 후 주석하며 혜월ㆍ수월ㆍ만공ㆍ한암 스님 등 한국불교를 이끈 선지식을 지도한 성지(聖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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