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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례] “일제에 빼앗겼던 ‘오대산본 실록’ 제자리 보관해 치욕 풀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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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21-06-29 09:33 조회11,2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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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 스님이 지난 22일 월정사 심검당에서 인터뷰하던 중에 최근 수집한 ‘대한제국 황실의 오대산 사고 참봉 임명 교지’를 소개하고 있다. 광무 4년인 1900년 3월 대한제국 춘추관에서 이종창이란 사람을 오대산 사고를 지키는 수호직 참봉에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산속 사고에 300년간 보관됐던 국보 <조선왕조실록>의 소유자는 예나 지금이나 엄연히 국가입니다. 우리의 요구는 이 국유문화재의 소유권을 바꿔달라는 게 아닙니다.”


오대산 고찰인 월정사 주지 정념(65) 스님의 목소리가 확 높아졌다. 그는 “지금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에 있는 오대산 실록이 원래 보관됐던 제자리로 돌아와 관리되기만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관리 주체도 국가·지자체·사찰 어디든 논란을 벌일 게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왜 돌아와야 할까? 그는 기다렸다는 듯 간명하게 답했다. “우리 절에서 지켰던 나라의 기록이 일제에 의해 강탈당해 일본으로 건너갔고, 우리 절의 노력으로 되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지난 16일 문화계·불교 교단·강원도 지역 인사 700여명과 함께 ‘오대산 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의궤 범도민 환수위원회’(이하 환수위)를 발족시킨 핵심 주역 중 한명인 정념 스님을 22일 월정사 경내 심검당 집무실에서 만났다.

 

 

 

‘조선왕조실록·의궤 범도민 환수위’ 공동위원장 맡아 국회청원 등 추진 계획

 

월정사·교단 나서 2006년 도쿄대 ‘반환’ 2011년 문화재청 요구로 ‘박물관’ 건립


2016년 돌연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 “실록 돌아와야 ‘유네스코 유산’ 가능”
 



강원도 평창군 월정사 입구에 있는 ‘왕조실록·의궤 박물관’. 국비와 지방비 131억원을 지원받아 지난 2019년 11월 건물면적 2150㎡(650평)에 지상 2층 규모로 건립됐다.

 

조정래 소설가, 김동호 전 부산영화제집행위원장 등과 더불어 공동위원장을 맡은 스님은 환수위 출범을 계기로 실록 제자리 찾기 운동을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 새달 문화재청장,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의 면담을 추진하고 국회 청원 등 환수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오대산본 실록은 2004~05년 정념 스님과 혜문 스님을 비롯한 월정사와 교단 관계자들이 도쿄대의 소장 사실을 파악한 뒤 월정사 명의로 소송을 준비하는 등 환수운동을 벌인 끝에 2006년 도쿄대가 서울대에 기증하는 형식으로 반환했다. 2011년에는 일본 정부가 오대산 사고본 왕실기록문서 의궤류도 우리 정부에 돌려줬다. 문화재청은 2016년 국유 왕실문화재란 점을 감안해 반환된 실록과 의궤를 국립고궁박물관에 이관했다. 원래 자리인 오대산으로 돌려달라는 월정사의 요구는 수용되지 않았다.

 

조선시대 오대산 사고의 실록들은 나라의 지시로 월정사에서 관리 노역을 맡았던 게 사실이다. 이런 내력이 있는 국유 문화재에 대해 왜 사찰에서 환수를 요구하느냐는 일각의 의문을 의식한 듯 스님은 제자리 찾기가 왜 절실한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임진왜란 직후인 1606년 실록의 안전을 위해 오대산 깊은 산속에 사고가 건립되었지요. 월정사 주지가 유사시 승병을 동원할 수 있는 왕의 밀부를 갖고 300년간 실록의 관리 책임을 맡았습니다. 그 사이 80차례 넘게 실록 등을 꺼내 말리는 포쇄 작업도 했지요. 한일병합 뒤인 1913년 총독부 관리가 산속에 들어와 왕조실록 잔여본을 침탈하고, 주문진항에서 배에 실어 일본으로 빼돌려요. 그때 가져간 수백여권의 실록은 10년 뒤 대지진으로 불타버리고 75권만 남습니다. 오대산 사고본 실록에 어린 수난사는 민족의 수난사와 직결됩니다. 이런 치욕이 깃든 실록 잔여본을 국가 아닌 우리 절과 민간 전문가들 힘으로 되찾은 겁니다. 원래 자리에 영구대여해서 관리하는 것이 과거 역사의 치욕을 제대로 풀어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국유문화재는 국가기관에서 일원화해 관리해야 한다고 문화재청은 일관된 방침을 표명해왔다. 

스님의 생각은 달랐다. “오대산 실록 잔여본은 방대한 전체 사고본 실록 중에서 극히 일부여서 고궁박물관에 두면, 활용될 여지가 별로 없어요. 월정사 초입에 2019년 국가 예산까지 받아 2층, 2148㎡(650평) 규모의 첨단 수장 전시시설을 갖춘 ‘왕조실록·의궤 박물관’도 2019년 이미 지어놓았으니, 상설전시·문화체험·콘텐츠로 활용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2011년 환수고유제 때 문화재청장이 관리 시설을 갖추면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말을 믿고 시설까지 지었으니 돌려받는 게 순리지요.”

 

월정사, 상원사가 있는 오대산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을 품고 있어, 삼국시대부터 전통 신앙의 터전이었다. 월정사는 평창군과 함께 오대산의 자연경관과 불교 문화재들을 유네스코 복합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중장기 계획도 추진 중이다.

 

스님은 “실록의 제자리 찾기가 세계유산 등재의 필수적 요소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역의 문화분권은 이슈이자 대세입니다.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지자체들의 미술관 유치 경쟁이 뜨겁지 않습니까. 서울 경복궁에 100여년간 타향살이하던 고려시대 걸작 ‘지광국사 현묘탑’도 최근 원래 자리인 원주 법천사 터 귀환이 확정됐습니다. 지역 각지에 연고가 있는 문화유산들의 제자리 찾기와 온전한 재활용은 정부가 표방한 문화분권 정책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지표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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