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오대산 청량선원 기운은 50년 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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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9-11-21 10:17 조회5,849회 댓글0건본문
‘창간 60주년 맞이 특별기획’
다시 온 동안거...다시 읽는 ‘선방일기’
1970년 전후 오대산에서
동안거 지낸 어느 수좌의
치열한 참선 수행기 담아
입소문 타고 꾸준한 반향
‘북방제일’ 상원사 청량선원
정진 열기는 예전과 같아
“우리가 수행하는 이유는
자신의 운명 바꾸기 위한 것“
스테디셀러 ‘선방일기’의 배경인 오대산 상원사 문수전. 저자 지허스님은 이곳에서 정진했다.
“그러나 간과(看過)할 수 없는 사실은 출신 성분이 다른 모임이긴 하지만 전체가 무시되고 개인이 위주가 된다는 점이다. 견성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처음도 자아(自我)요, 마지막도 자아다. 수단도 자아요, 목적도 자아다. 견성하지 못하고서 대아(大我)를 말함은 미먕(迷妄)이요, 위선일 뿐이다. 철저한 자기 본위의 생활은 대인관계에 있어서 극히 비정하게 느껴진다.”
<선방일기>는 전설적인 책이다. 책의 내용도 책이 나온 배경도 저자의 이력도 비범하다. 1970년 전후 동안거 기간, 어느 수좌의 치열했던 참선수행 기록이다. 1973년 어떤 월간지에 연재됐는데 입소문을 타고 반응이 뜨거웠다. 이에 힘입어 1993년과 2000년 단행본으로 출간됐고 최근 판은 2010년 불광출판사가 펴냈다.
지은이는 단지 ‘지허스님’이란 이름으로만 알려져 있다. 누군지 아무도 모른다. ‘서울대를 졸업했고 탄허스님 문하에서 출가했으며 1975년 즈음 입적했다’는 구전(口傳)만 떠돈다. 국내 최고 명문대 출신이라는 소문은, 글에 나타난 깊고 뛰어난 사유 그리고 뚜렷한 ‘먹물’의 문체에서 연유했을 것이라고 혹자들은 유추한다.
전체 2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됐으며 분량은 삽화와 편집으로 최대한 늘려서 120페이지 남짓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만큼 탄탄한 내공이 서려 있어서, 글의 짤막함이 허술하게 느껴지거나 서운하지 않다. 까마득한 고독에 스스로 갇혀 화두와 열심히 씨름하는 모습은, 인생의 의미를 찾는 이들에게 상당한 본보기가 된다.
올해 동안거에는 17명의 수좌 스님들이 상원사 청량선원에 방부를 들였다.
“하지만 이 비정한 자기 본위의 생활에 틈이 생기거나 흠결이 생기면 수도(修道)의 끝장을 알리면서 태타(怠惰)에 사로잡힌 무위도식배가 되고 만다. 자기 자신에게 철저하게 비정할수록 견성의 길은 열려지는 것이다. 전후좌우 상고하찰(上考下察)해보아도 견성은 끝내 혼돈된 자아로부터 출발하여, 조화된 자아에서 멈춰질 수밖에 없다. 견성은 끝내 자아의 분방한 연역(演繹)에서 적료(寂廖)한 자아로 귀납되어야 한다.”
선방일기의 배경은 오대산이다. 제4교구본사 월정사의 말사인 상원사(上院寺) 청량선원(淸凉禪院)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금년 동안거 결제일(11월11일)을 앞둔 8일 상원사를 찾았다. 월정사에서 차로 한참을 더 들어간다. 걸어가면 거의 2시간 길이다. 지허스님도 이 길을 걸어서 들어갔다.선방일기의 첫 페이지에는 ‘방부를 들이고(房付, 스님이 절에 가서 그곳에서 머물며 수행할 수 있기를 부탁하는 일)’ 사중(寺中) 스님들에게 인사를 올리고 절 주변을 둘러보며 각오를 다지는 장면이 나온다. 서기 724년에 창건된 상원사는 무엇보다 부처님의 진신(眞身)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으로 유명하다.
현대에는 한국불교의 선풍을 드날린 한암 대선사(漢岩, 1876~1951)가 주석하며 수행을 지도하면서 남다른 위상을 지니게 됐다. 선방일기의 저자 역시 책에 한암스님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면서 상원사의 내력을 기술하고 있다. 올해 동안거에는 17명이 방부를 들였다. 매년 엇비슷한 숫자이고 깨달음을 향한 열정도 그러하다.
“비정 속에서, 비정을 씹으면서도, 끝내 비정을 낳지 않으려는 몸부림, 생명을 걸고 생명을 찾으려는 비정한 영혼의 편력(모험)이 바로 선객들의 상태다. 진실로 이타(利他)적이기 위해서는 진실로 이기(利己)적이어야 할 뿐이다. 모순의 극한에는 조화가 있기 때문일까.”
선방일기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50년 전 선원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잘 묘사했다는 것이다. 세상을 등진 사람들의 세상이지만 거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다. 설날 즈음에 고기 대신 버섯이 들어간 만둣국을 해먹고, 다 함께 모여 겨울 김장을 하는 일은 정답다. 어려서 절에 들어온 ‘올깨끼’와 나이 들어 들어온 ‘늦깨끼’가 옥신각신 다투는 걸 저자는 재미있게 구경한다.‘육체가 먼저인가 정신이 먼저인가’, 수좌들 간의 열띤 철학적 논쟁도 볼 만 하다. “신외(身外)가 무물(無物)”이라며 독신수행자일수록 자기 건강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는 조언은 인간적이다. 인간이 짊어져야할 원초적 슬픔도 감상할 수 있다. 당시에는 죽을병이었던 결핵에 걸려 구성원들이 모아준 몇 푼의 돈을 쥔 채 절을 떠나는 스님이 나온다.
저자의 측은한 독백을 들어보면 이때 이미 승려복지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스님들의 고민이 싹트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우울증이란 개념조차 없던 시절, 1주일 간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에서 낙오해 제풀에 자책하고 주변의 타박을 듣다가 결국 마음의 병이 깊이 든 스님도 있다. 이렇게 산사에도 짙게 물든 희로애락 속에서, “비정을 씹으면서도” 끝내 비정에서 벗어나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저자는 안거 끝까지 버틴다.
“선객은 숙명의 소산이 아니라 운명의 소조(所造)이다. 숙명은 자기 이전에 던져진 의지와 주어진 질서여서 생래적으로 어쩔 수 없는 선천적인 사실이지만 운명은 자기 자신의 의지와 자유로이 선택한 후천적인 현실이다. 그래서 숙명은 필연이지만, 운명은 당위(當爲)요, 숙명이 불변이라면, 운명은 가변이요, 숙명이 한계성이라면, 운명은 가능성을 의미한다. 갑부(甲富)의 아들로 태어나지 못하고 거지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숙명의 소산이라면 자라서 갑부가 된 것은 운명의 소조이다. 내가 이나 벼룩으로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숙명의 소치이고 인간이기 때문에 불교에 귀의하고 정진 견성할 수 있다는 것은 운명의 소조에서다.”
오대산의 별칭은 청량산이다. 상원사 주지 해량스님의 전언에 따르면 여름에도 청량하고 겨울에도 청량하다. 여름에도 제법 시원하고 겨울에도 조금은 덜 춥다. 포근한 감마저 있어 정진하기에 알맞다. 강원도는 추위의 대명사인데 여기만큼은 안 그렇단다. 청량선원이 ‘북방제일(北方第一)선원’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 까닭에는 기후적 이점도 작용하는 셈이다.
사찰의 중앙에는 문수전(文殊殿)이 자리했다. 원래는 이곳이 선방이었고 선방일기에서 저자가 가부좌를 틀던 곳도 이곳이다. 현재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이 상원사 주지였던 2002년에 문수전 오른편에 청량선원을 새로 지었다.
6.25 전쟁 때, 작전을 위해 국군이 문수전을 불태우려했다. 한암스님이 안에 들어앉아 ‘나도 같이 태우라’면서 움직이지 않자, 결국 군인들이 절을 다 태운 척 하기 위해 문짝만 태웠다는 뒷얘기가 전한다. 대의를 위해 용기를 내는 것은 살면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느낀다.
“현재의 나는 숙명의 객체이지만 운명의 주체이다. 숙명은 자기 부재(不在)의 과거가 관장했지만 운명은 자기 실재(實在)의 현재가, 그리고 자신이 관장하는 것이어서 운명을 창조하고 개조할 수 있는 소지는 운명(殞命) 직전까지 무한히 열려져 있다.”
책을 읽으면 저자 특유의 세계관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중도(中道)다. “버림받지는 않았지만 추앙받지도 못했다.” “환영도 거부도 하지 않았다.” “불만도 없었지만 만족도 없다.” “다정과 앙숙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회자정리(會者定離)다.
그러나 이자정회를 기약한 이별이기도 하다.” 수행자의 본능이자 저력인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고 있다. 삶을 함부로 규정하지 않으며 누군가를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행실에 요령이 없고 속정이 많은 성격이었다는 걸 헤아릴 수 있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가장 마음에 든다. “운명(運命)을 창조하고 개조할 수 있는 소지는 운명(殞命) 직전까지 무한히 열려져 있다.” ‘운명’을 소재로 한 지허스님의 언어유희에서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는 이치를 읽는다. 절 안에서나 절 밖에서나, 자기의 운명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도 좋은 수행이라 하겠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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