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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어떤 고난도 지나가기 마련”…“인생은 허망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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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9-09-25 09:22 조회6,1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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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고난도 지나가기 마련”…“인생은 허망하지 않아”

 

 

‘틱낫한의 플럼빌리지’ 모델로 삼아
아픈 사람들 위한 치유의 마을 조성
촌장에 스님 아닌 조정래 작가 초빙

정념 스님
종교 상관없이 누구나 와서 힐링을
차담회·인문학 강의하며 도움 주길
오대산이 낳은 한암·탄허스님 존경
매너리즘도 독선도 모두 경계해야

조정래 작가
새벽엔 글 쓰고 낮엔 사람들 만날 것
죽음에 대한 두려움 80%가량 극복
‘반야심경’ 3천번 쓰며 20% 채울 터
절개 지킨 만해 스님이 ‘인생 롤모델’
오대산자연명상마을 설립자 정념 스님-조정래 작가 대담

 

오대산자연명상마을 내 동림교를 건너다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조정래 작가(왼쪽)와 정념 스님.
오대산자연명상마을 내 동림교를 건너다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조정래 작가(왼쪽)와 정념 스님.
강원도 평창 오대산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비롯한 보물이 많다. 그 월정사 일주문에 들어서기 전 오대산 초입에 새로운 명물이 들어섰다. 오대천 계곡 양쪽 9900여제곱미터의 너른 분지에 한옥과 목조 숙소들을 비롯한 21개 부대시설을 갖춰 지난해 8월 개원한 오대산자연명상마을이다. 15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100여실의 숙소와 명상실, 세미나실, 문학관에 자연밥상을 차려내는 레스토랑까지 갖췄다.

 

이곳은 세계적인 고승 틱낫한 스님이 프랑스에 만든 플럼빌리지와 같은 명상마을을 만들겠다는 퇴우 정념(63) 스님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최근 맑은 샘물 같은 <정념 스님이 오대산에서 보낸 편지>(불광출판사 펴냄)를 낸 산승이다. 그러나 전통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지난 4월부터는 불교의 미래를 준비할 조계종 백년대계본부장을 맡고 있다. 그는 월정사 주지로 16년째 재임하면서 지난해 평창올림픽 참가자들로부터 환호를 받은 전나무숲길을 조성하고, 단기출가학교를 운영해낸 고수다. 그가 이를 넘어서 이번엔 ‘백년대계’를 위한 절묘한 수를 뒀다. 오대산자연명상마을 촌장에 스님이 아닌 외부 선지식을 모신 것이다. 소설가 조정래(76) 작가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대하소설을 통해 한민족 현대사의 고난과 영광을 그려내온 그가 정념 스님의 초대에 응해 다음달부터 부인 김초혜 시인과 함께 이곳 명상마을에서 살면서 여민동락하기로 한 것이다.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승려 시인 조종현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절에서 보낸 조 작가로서는 부처의 품에 73년 만에 귀환하는 것이기도 하다. 강원도엔 인제 만해마을, 봉평 이효석문학관, 원주 토지문학관 등에 수많은 방문객들이 찾아 이제는 만날 수 없는 고인의 향기를 그리는데, 이곳에서는 ‘살아 있는 대작가’를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숙소 방마다 이런 명상공간이 있다.
숙소 방마다 이런 명상공간이 있다.
17일 오대산자연명상마을 안 동림선원에서 산문을 나온 정념 스님과 도회지에서 온 조 작가를 만났다. 물 맑고 공기 좋은 오대산에서 참선수행을 하고, 동양 무술과 요가까지 해 청수한 스님과 달리 현대사와 치열하게 씨름하며 머리털이 절반은 빠져버린 노작가의 모습이 출세간과 세간의 차이를 말해주는 것만 같다. 그러나 정념 스님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를 지낼 만큼 세간사에도 참여한 반면 조 작가는 글을 쓸 때는 글감옥에 자신을 가둔 은둔수도승으로 살아왔다는 점에서 반대의 측면도 없지 않다. 조 작가는 문학정신과 시대정신을 중시해 불의엔 양심의 칼을 들고, 자기 소신을 밝히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그러나 계파와 성향을 가리지 않고 모든 신자들을 제접해야 하는 정념 스님은 ‘출세간적인 부동의 매너리즘에도 빠지지 말고, 세속화해 독단과 독선에 빠지지도 말아야 한다’며 중도를 강조한다. 이렇듯 다른 두 줄기의 물이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을까.

 

강원 오대산 초입에 자리잡은 자연명상마을 전경.
강원 오대산 초입에 자리잡은 자연명상마을 전경.
오대산자연명상마을 전경.
오대산자연명상마을 전경.
“이곳은 사찰 밖이니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나 와서 명상하고 힐링해 스트레스를 풀고, 조 작가님이 방문자들과 차담회도 하고, 인문학 강의도 해줘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정념 스님의 꿈이다. 그런데 아직도 집필해야 할 소설이 창창한 조 작가가 그렇게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우려할 게 없다. 나도 이제 체력을 안배해야 할 나이가 아닌가.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쓸 때는 하루 꼬박 35~40매를 썼지만, <천년의 질문>을 쓸 때는 절반으로 줄여 20매만 썼다. 이제 이곳에 들어오면 스님들 주무시듯 밤 9시에 자고, 글은 새벽 4~7시에 쓰고, 낮시간엔 찾아오는 대중들과 만나 인생담을 나누고,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지도 이야기할 것이다.”

 

조 작가는 “이곳에 와 <반야심경>을 3천번을 쓰고 싶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찾아오게 마련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80%쯤은 극복했는데, 남은 20%까지 극복하기 위해 사경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반야심경> 한번 필사하는 데 한 시간가량이 소요되던데, 3천번을 쓰면 도를 터득할 것 같다”고 했다. 그다운 치열성이 아닐 수 없다.

 

조 작가는 불교계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묻자 ‘만해 한용운’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서산·사명대사가 왜의 침략에 맞섰듯이 끝까지 변절치 않고 절개를 지키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는 “만해의 시 <알 수 없어요>에서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됩니다’라고 한 것을 국어교사들이 윤회로 설명하지만, ‘죽은 피가 생명으로 소생하기까지 나라를 찾겠다’는 결의를 보인 것”이라며 “나도 롤모델인 만해처럼 살다 가고 싶다”고 말했다.

 

오대산자연명상마을 내 명상실 등이 있는 동림선원 복도를 걷는 정념 스님(왼쪽)과 조정래 작가.
오대산자연명상마을 내 명상실 등이 있는 동림선원 복도를 걷는 정념 스님(왼쪽)과 조정래 작가.
정념 스님은 “근대 수행자의 사표였던 한암 스님과 인재 양성을 통해 한국불교 중흥의 토대를 마련한 탄허 스님을 존경한다”고 했다. 한암·탄허는 근현대 오대산이 낳은 대표적 고승이다. 특히 정념 스님은 “탄허 스님은 암울한 시대에도 한민족의 나아갈 길을 밝혀준 선지식”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평창올림픽 때 오대산 전나무숲을 달린 성화는 조 작가로부터 정념 스님에게로 전해졌다. 한민족과 평창을 빛내려는 데서도 이심전심이다. ‘중생들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는 유마거사와 관음의 자비가 둘이 아니듯이, 둘은 이구동성으로 지치고 아픈 이들을 향해 손짓했다. 조 작가는 “현대인들이 경쟁만 하다 보니 뭔가를 이룬 사람은 이룬 사람대로, 못 이룬 사람은 그들대로 다 허망해한다”며 “황혼이 오면 나보다 길어지는 그림자를 봐야 하지만 인생은 허망하지도 부질없지도 않음을 이곳에서 함께 이야기하며 깨달아보자”고 했다. 정념 스님은 “저 하늘에 구름이 몰려왔다가 사라져가듯이 어떤 어려움도 다 지나가게 되어 있으니 절망하지 말자”며 “우리 이곳에서 함께 저 구름 지나 떠오를 밝은 태양을 맞아보자”고 독려했다.

 

동림선원에서 대담을 마친 둘이 명상마을과 선원을 연결한 동림교를 건넌다. 동림교는 유·불·선으로 종교가 다른 세 벗이 어울려 다리를 건넌 호계삼소의 고사에 나오는 이름이다. 선원과 마을, 출가자와 재가자를 연결한 다리 위에서 둘이 파안대소를 터트린다. 아래로 시원스레 계곡물이 흐른다. 우리의 젖줄, 한강의 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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