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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4. 탑과 부도, 그 세월의 흔적 ① - 동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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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9-02-19 08:39 조회6,4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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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풍경소리로, 이끼는 푸르름으로 경책하네

천년의 세월 견녀낸 탑과 부도
지그시 눈을 감은 뒤 대화하면
옛 석공들의 망치소리와 함께
시주자들 소원과 정성 들려와

탑과 부도는 수행자 시작과 끝
출가해서는 탑 앞에서 계 받고
부도전 자리 잡으며 삶 마무리
불법승 한 점서 만나는 결정체
그림=허재경
그림=허재경

명산대찰에 가면 으레 그 도량에 걸맞은 탑이 있다. 그 가운데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은 고려시대 유행했던 팔각 다층탑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탑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내가 월정사로 출가했을 때, 마당 가운데 아름답고 웅장하게 서 있던 탑을 잊지 못한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있는 탑신, 바람이 불 때마다 팔각의 옥개석 끝에 매달려 짤랑대는 수많은 풍경소리, 그리고 파릇파릇 피어있는 기단의 이끼들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탑 앞에는 무릎을 꿇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있는 약왕보살좌상이 있었다. 오랜 세월 몸은 이끼로 뒤덮여 마치 다 해어진 누비를 입고 계신 듯했지만 얼굴에는 곱디고운 석화(石花)가 피어 있었다. 도톰한 볼에 배어있는 은은한 미소는 이제 막 출가한 청년의 들끓는 마음을 편안하게 맞아주었다. 나의 행자시절은, 이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과 그 앞에 모셔진 약왕보살좌상과 함께 시작이 되었다. 

새벽 도량석을 할 때는 탑 앞에서 시작해 온 도량을 돌았고 저녁에도 탑 주위를 한 번 돌아본 다음 삼경 종을 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한국전쟁 때에 온 도량이 불에 타 없어졌지만 이 탑만은 다행히 화마를 피해 오대성지를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다. 아마 월정사에 이 탑마저 소실이 되었다면 부처님 진신사리를 산중에 모신 도량으로서의 그 찬란했던 역사는 퇴색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사찰에 있는 탑들은 산중의 중심이며 모든 것을 지켜보는 산 증인인 셈이다.

이 탑도 자세히 보면 옥개석 여기저기 금가고 깨진 곳이 더러 있다. 천년의 세월동안 도량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탑인들 어찌 상처가 없을 수 있겠는가. 책을 읽을 때 저자의 의도를 잘 이해하려면 글자를 떠난 행간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사찰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감정이입, 즉 나와 탑이 한 마음이 되어 대화를 해보는 것이다. 눈을 지그시 감고 석공들의 망치 소리와 시주들의 소원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탑 층층마다 서려있는 그 세월의 흔적들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다행히 그 비밀의 문으로 들어가는 코드를 알게 된다면 천년의 역사는 술술 실타래 풀리듯 흘러나올 것이다. 

오대산 적멸보궁 뒤쪽에 1m도 채 안 되는 조그만 탑이 하나 있다. 옥개석에는 마치 초가지붕에 하얀 눈이 내린 듯 이끼가 덮여있다. 근처 어디쯤엔가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두었다는 증표로 모셔둔 사리탑인 것이다. 가끔 보궁을 참배하고 법당 뒤에 가서 앉아 이 사리탑을 보고 있으면 마치 할 일을 다 해 마친 사람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세상의 사리탑 가운데 이렇게 작고 아름다운 탑이 또 있을까? 만약 부처님과 한 번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불자라면, 오대산 적멸보궁에 가서 삼천 배를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절을 마치고 고요히 앉아 사리탑을 친견하고 있으면, 아마 부처님의 감로법문을 가슴으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탑이란 무엇인가? 부처님을 대신하는 것이다. 탑은 곧 부처님이다. 탑 속에는 부처님의 사리나 경전을 봉안한다. 부처님사리는 다비를 하고 난 후 타지 않고 남은 또 다른 부처님이다. 부처님의 온 생애가 사리라는 물질로 남아, 그분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제자들에게 형상을 대신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경전을 모시는 것은 그분의 평생 가르침을 믿고 의지하며 실천하겠다는 맹세이기도 하다. 

탑에는 불탑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민초들이 자갈밭을 일구다 나오는 돌멩이로 쌓는 돌탑도 있다.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 산비탈 언덕에 찰싹 들러붙어 파내고 골라내도 끝이 없는 돌더미들, 그 서리서리 맺힌 한들이 사리가 되어 탑을 이룬다. 비바람 눈보라에 시달릴 대로 시달리며 견뎌낸 돌더미는 한 많은 서민들의 ‘사리탑’이나 다름없다. 어느 절이나 도량 구석구석에 있는 크고 작은 돌탑들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절을 오르내리면서 가지가지 바람들을 담아 하나하나 쌓았을까.

부도는 스님들의 무덤이다. 탑 속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다면, 부도에는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은 변하니 그 형상에 집착하지 말라 하셨으나, 다만 중생들이 그 형상에서 벗어나질 못해 탑도 만들고, 부도도 모신다. 부처님과, 그 가르침을 평생 행하신 스님들의 뜻을, 두고두고 새기겠다는 결의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부도란 한 생애서 성불하지 못한 수행자가 남긴 아쉬움의 흔적이다. 그리고 후학들에게 열심히 정진하라는 경책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춘다가 올린 생애 마지막 공양을 드시고 몸이 쇠약해진 부처님께서는, 사라수 아래에 이르러 아난에게 쉴 자리를 마련하라고 하셨다. 부처님께서 자리에 눕자 갑자기 사라수에서 꽃이 피어났다. 이 광경을 본 부처님께서는 이곳에서 열반에 들겠다고 말씀을 하셨다. 슬피 우는 제자들에게 ‘형성된 모든 것은 소멸되기 마련이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는 마지막 법문을 하셨다. 만약 부처님께서 묘비명을 쓰셨다면 이 말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그대 비 오는 날, 오래된 산사의 석탑을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사찰 한 귀퉁이에서, 이름마저 희미해진 스님들의 부도를 가만히 만져본 적이 있는가? 꺼칠꺼칠한 화석처럼 굳어있는 돌에서, 파릇파릇 피어나는 수천수만 개 이끼의 그 환희로운 꿈틀거림을, 그 속삭임을…. 그 이끼 하나하나가 이야기 해주는 전설을 들어보라. 탑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 들리지 않는가? 바람이 불면 딸랑거리는 풍경소리로 화현해서, 쉼 없이 정진하라고 가르치는 부처님의 음성을···. 그대, 보이지 않는가? 비 오면 푸른 이끼로 화현해서 생명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는 조사 선지식들의 모습을···. 탑과 부도는 수행자의 시작과 끝이다. 출가해서 탑 앞에서 계를 받고 스님이 되어, 입적하면 부도전에 자리 잡는 것으로 삶을 마무리 짓는다. 탑과 부도는, 부처님과 그 가르침과 수행자가, 시간과 공간의 한 점에서 만나는 흔적이며 숭고한 결정체이다.

동은 스님 삼척 천은사 주지 dosol33@hanmail.net

 

[1477 / 2019년 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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