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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월정사 단기출가 체험기-2] "중생의 삶도 보살의 삶도 다 한 세상 사는 방법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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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8-09-03 08:43 조회8,200회 댓글0건

본문

"인연이 깊으니 아픔도 크다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108배, 108명의 지인 떠올리며 절 하니 나의 내면 보여
출가는 해탈과 열반 구가하는 자유와 행복의 길 일찌니

 

 

 

입교 후 매일 6~7시간에 걸친 기도 시간마다 내 가족과 친지, 친구, 주변 지인, 먼저 세상을 등진 그리운 이들을 위한 기도를 해왔다. 평소 내가 좋아했던 이들을 기도하며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 108배를 할 때마다 108명의 지인을 떠올리며 절을 하면 나의 내면도 볼 수 있다. 신기하다. 항상 기도의 끝은 내가 천사가 된듯한 느낌이다. 스스로 보는 표정도 편안해 보인다.

속세는 어떻게 돌아갈까.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은데…" 걱정이 가슴을 짓누른다. 그런데 이 모두 부처님의 뜻 안에서 이뤄질 문제다. "내가 걱정할 것이 아니고 부처님께서 결정할 문제다"라고 생각키로 했다.

오대산은 여타 교구본사나 산사보다 청량함이 감돈다. 사찰 주변에는 일반인 주거지와 상가가 없다. 반야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의 상주도량인 상원사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아이들의 순수함과 지혜에 다소의 손상이나 흐려짐을 예방하기 위해서일 듯하다. 아이들의 까다로운 입맛 때문일까? 공양도 상원사 식사가 월정사보다 맛있는 것 같다.(상원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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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 16일차, 처절한 수행으로 단단한 정신근육 만드는 '구도의 삶' 가늠하기 어려워



7월 16일(월) 16일째.

아상(我相). "스스로를 영원한 실체라고 착각하는 집착과 고집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비심을 가져야…" (스님은 그것을 하심(下心)이라 하셨다).

해조 스님. 28세에 출가해 20년간 정진하신 스님이다. 발심수행장으로 '나는 누구인가?' 因緣生起(연기법)를 강의하셨다. '나는 내가 아닌 것에 의해 내가 된다'는 것으로 'A와 B는 관계성 속에서 완성된다'는 뜻이다. 즉 A는 B에 의해 A가 된다.

어려운 얘기지만 쉽게 얘기하면 '네가 있어 내가 있다'는 뜻 정도 되지 않을까?



"언제나 숲은 분주한 듯 하지만 인간 세상처럼 잡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속세와 단절된 지 3주째 들어섰다.

오늘은 스님께 질문을 했다. 월드컵을 어느 나라가 우승했는지. 스님께서 얘기해주신다. 프랑스가 우승했다고. 보름 이상을 속세와 단절돼있다 보니 멍해진 기분으로 사람까지 이상해 진듯하다.

단 보름의 간접수행도 이 정도인데 1년에 3개월씩 두 차례 안거를 치르시는 스님들. 우리에게 강의하시는 스님들은 십수 년 이상을 묵언으로 수행하고 20~40안거 이상을 치른 스님들이다.

심지어 40년 동안 토굴(선방)에서 묵언과 좌선으로 일종식(하루 한끼)을 하며 구도의 삶을 실천하신 스님도 계시니(청화스님 다큐 참조) 스님들의 정신세계는 감히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이 선지식들. 처절한 수행으로 단단한 정신근육을 만들어 그 품에 중생들의 아픔과 고통을 헤아리고 구도하시니 그야말로 부처님들이다.

어느 사회나 정신세계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종교와 문화가 안정적으로 정착돼야 한다. 인간세계의 안정과 평화 구축을 위한 스님들의 성불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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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지금까지 바쁨과 치열함 속에서 생존을 위해 견뎌온 세월이었다. 또 이런 세상을 언제 경험하겠는가? 그저 존재함에 감사할 뿐.

오늘 수업은 자애명상이었다. 마음챙김(바디스캔)인데 스스로 몸의 상태확인이 가능하다. 편치않은 부위를 찾아내는 신비로움도 경험했다. 자애명상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비심을 갖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날도 지정스님께서 요가 호흡법을 알려주셨다. (명상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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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하는 모습.



모두 신경이 날카로워진 듯하다. 3주째 오후 불식하고 바깥세상과 차단돼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가끔 현기증도 느낀다.

이틀 뒤부터 오후 불식이 해제되면 저녁 식사를 하게 된다.

일주일 뒤인 다음 주 월요일 하산한다. 몹시 피곤한 저녁이다. 취침과 동시에 30초 만에 코를 고는 도반도 있다. 새삼 휴식의 의미를 체감한다. 우리는 곧 취침하게 된다.



■ 17일차, 묵언… 변하면 변한대로 어긋나 있으면 어긋난 그대로 받아들이기



7월 17일(화) 17일째.

"참회, 선정의 길은 어떻게 들어가는가?"

자칫 흉내만 내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묵언의 지속으로 벙어리가 된 듯하다. 묵언하라는 이유는 일단 듣기만 권유하는 단계다. 작용을 접수하되 반작용은 보류한다. 듣기만 하면 일단은 아무 탈이 없다. 스님들은 중생들의 얘기를 듣고 정보를 융합해 수행과정에서 형성된 프로그램에 적용해 말씀해 주신다. 그것이 곧 중생에게는 구도다.

법신명상을 강의하신 밀엄스님은 중앙승가대를 나와 홍천 호국사 주지와 각 선원장을 거친 후 월정사 호법국장 소임을 맡고 계신다.

변하면 변한대로 어긋나 있으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스스로 판단할 문제다. 내가 개입한다고 처리될 문제가 아니라서 관망하고 지켜보며 세상을 살라는 뜻이다.

묵언수행의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 하다.

묵언을 깨뜨려 참회를 받게 된 도반들이 늘어나고 있다. 질서를 깨뜨린 도반들에게 주는 경고가 참회인데 한번 지적당할 때마다 108배를 해야 한다. 108배를 하려면 빨라도 18분에서 20분 정도 걸린다. 세 번 참회를 받게 되면 취침시간에 한 시간을 삼보전을 향해 절을 해야 한다. 당연히 취침시간도 줄어든다.

오후 불식의 지속으로 도반들의 신경도 날카로워지는 듯하다. 악기가 최고의 선율을 선사하는 섬세한 시기다.



■ 18일차, 피폐해진 인성, 삶의 저변에 출가정신 필요한 이유



7월 18일(수) 18일째.

퇴우 정념 주지스님의 특강이 있었다. 정념스님은 상원사 주지를 12년 거치고 지난 2004년부터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 주지를 맡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출가학교를 개교한 정념스님은 학교 설립취지를 "출가문화체험으로 더 넓은 우리 삶의 현장이 도량화되고 일상이 수행의미를 지닌 삶으로 전환된다면 그것이 곧 불교가 지향하는 이상세계를 이뤄가는 길"이라고 강조해 왔다.

이날 특강에서는 "출가는 해탈이라는 최고의 자유, 열반이라는 최고의 행복을 구가하는 자유와 행복의 길"이라며 "채우는 것보다 비워내는 것. 탐욕, 분노, 어리석음을 비워내고 물질적 삶의 정신적 빈곤을 치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세상의 정보와 지식은 넘쳐 나지만 인성이나 지혜는 피폐해졌고 소득은 3만불 시대로 나아가지만 마음은 더 빈곤해짐을 우려한 것으로 삶의 저변에 출가정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퇴우 정념스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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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우 정념스님.

나는 정념스님에게 현재의 대한불교조계종이 총무원장 교체 등으로 종단이 위기라 할 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대해 직접 총무원장 선거에 나설 용의가 없는지를 물었다. 정념스님은 "이제 주지 소임도 후배들에게 물려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엉뚱한 답변이다. 그러나 문수보살의 성산(聖山)으로, 불교성지인 오대산의 기백을 담아 대한불교를 성장시키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일었다.

이날 밤 지정스님은 유도명상을 강의하고 습의를 진행했다.



■ 19일차, 진정으로 바뀌어야 할 사람이 나 자신이라는 것을…



7월 19일(목).

'내가 바뀌어 상대를 변화시킨다'

월정사 선덕스님인 탄허스님의 시자(市子)를 거친 원행스님 특강이 있었다. 원행스님은 도반들의 갈마를 담당했던 스님으로 정·관계에 불교계의 의사와 의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신다.(원행스님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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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행스님 특강

언젠가부터 난 건배 제의 때 다음과 같은 어귀를 사용했다. "20대 때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돌멩이를 던졌고, 30대에는 마누라를 바뀌게 하기 위해 부부싸움을 했다. 40대에는 아이를 바뀌게 하려 회초리를 들었다. 그러나 50대가 돼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진정으로 바뀌어야 할 사람이 나라는 것을."

먼저 나 자신을 위한 자비심을 갖는 것이 선행 돼야 할 듯싶다.

오후에는 월정사 요양원에 봉사를 갔다.(요양원 단체봉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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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 단체봉사.



사실상 오후 불식이 끝났다. 처음으로 먹는 저녁은 월정사요양원 자원봉사 후 컵라면과 김밥이었다. 그렇게 그리던 커피도 마셨다. 20여 일간 슬림한 최소의 식사만 하다가 인스턴트 식품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었지만 도반들은 편치않은 속을 달래며 저녁을 보냈다. (요양원 단체봉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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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요양원봉사를 마치고.





저녁에는 '별빛보기'가 있었다. 밤 9시가 넘어 아무 불빛도 없는 밤길을 걷는다. 오로지 달과 별빛만 보인다.

선재길, 남대지장암과 동대 미륵암 앞길을 걸어 상원사로 향했다. 칠 흙같이 어두운 길을 걷다 보면 마음의 불빛이 길을 가르쳐 준다. 달이 참 밝다는 생각을 했다.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달빛처럼 깊은 어둠 속이지만 온 세상의 하얌을 보게 된다. 이 시간은 묵언이 해제된다. 오대산 상원사의 깊은 어둠 속, 모처럼 도반들과 한없는 대화를 나눴다.



■ 20일차, 오대산 상왕봉 거쳐 비로봉으로, 도반들 녹초되다.



7월 20일(금).

'북대 미륵암에서는 하늘을 보라'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나옹선사의 시 '청산은 나를 보고'의 청산이 바로 이곳 북대 미륵암이다.

아침 8시 상원사를 출발, 북대 미륵암까지 임도를 두 시간 가량 걸어서 올랐다. (미륵암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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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암 가는 길.



10시가 넘어 북대미륵암에 도착했다. 사시예불이 진행 중이다. 주지 덕행스님은 매일 문수보살을 친견하신 듯 웃음이 맑고 인간미가 흐르는 스님이다.

과거 단기출가학교 학감을 역임하셨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스님은 "북대에서는 하늘을 봐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하늘을 봤다.

오로지 하늘밖에 안 보인다. 아! 이런 하늘이 있었구나. (북대 미륵암 덕행 주지스님 법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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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 미륵암에는 영산화상에서 석가세존의 부촉을 받으신 십대제자와 십육성인, 오백나한이 모셔져있다. 북대 미륵암 덕행 주지스님 법문.



사시예불을 마치고 점심공양을 했다. 스님과 공양주 보살님들께서 떡볶이를 준비해 주셨다. 북대의 추억은 하늘과 떡볶이다. 공양 후 비로봉으로 향했다.

비로봉을 향하기 전 상엄스님은 우리를 북대 미륵암 바로 밑에 위치한 큰 바위로 안내했다. 나옹대, 나옹선사가 적멸보궁을 보며 예불을 하던 곳이다. (나옹대) (나옹대에서 보는 적멸보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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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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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네'는 이곳에서 적멸보궁의 부처님을 바라보며 읊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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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봉 봉가는길에 있는 신갈나무

상왕봉(1천491m)을 거쳐 주봉인 비로봉(1천 563m)까지 가는 길은 주목 군락지를 거친다. (주목 군락지)

숨이 턱에 닿을 만큼 힘들다. 오후 불식으로 체내에 내재된 에너지원이 한계에 달한 것 같다. 동문회에서 준비해 주신 초코파이와 사탕, 에너지바, 과일, 물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감사함을 느낀다.

천신만고 끝에 비로봉에 올랐다.

오대산은 비로봉을 주봉으로 상왕봉, 동대산, 두로봉, 호령봉 등 다섯 봉우리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비로봉에서 보이는 적멸보궁은 산들이 연꽃잎처럼 겹겹인 중간에 위치해 있다. (상왕봉 사진) (비로봉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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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왕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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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봉에서.



하산은 비로봉에서 적멸보궁과 중대사자암을 거쳐 상원사로 간다. 급경사길이다.

5시가 넘어 월정사에 도착했다. 도반들 모두 녹초가 됐다.

대체로 행자 수행기간 동안 힘들었던 코스가 전나무 숲길 삼보일배, 적멸보궁 삼보일배, 명상과 참선을 위한 결가부좌 부동자세유지, 서대 수정암, 동대관음암 예불 등이었다. 오늘도 못지 않았다.

이제 남은 힘든 수행은 철야정진으로 밤 9시부터 새벽 4시까지 3천배를 하는 것이다. 힘듦. 수행의 백미라고 한다. 빨리 도전해보고 싶다. 철야정진을 마쳐야 졸업을 하기 때문이다.



■ 21일차, '서로 부처되기' 가슴에서 시작된 눈물, 응어리 녹아내리다.



7월 21일(토) 21일째.

서로 부처되기. "당신은 누구시길래 저에게 간절히 절을 하십니까?" (서로 부처되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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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부처되기.

오전에는 성보박물관과 명상수련원 탐방이 있었다.

'서로 부처되기'는 저녁 공양 후 문수전에서 참선 및 발우공양 대형으로 시작됐다.

절을 시작하기 전부터 눈물이 흐른다. 눈물이 없던 나인데 이렇게 눈물이 흐르는 건 왜일까. 하염없다. 스님의 죽비에 맞춰 내가 먼저 절을 했다. 60대 도반인 나의 부처는 눈물에 가려 보이질 않았다. 이유 없는 눈물이다. 가슴이 후련해 진다.

몸이 가벼워진다. 가슴에서 시작된 눈물이 계속 흐른다. 안경을 벗어놓아 108배가 끝날 때까지 눈물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가슴 속 응어리가 녹아내리는 '씻어냄과 정화'를 느낄 뿐.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와 주저앉은 여행자로 인해 죽비가 늦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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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부처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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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부처되기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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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부처되기를 마치고



서로의 108배가 끝날 때 눌산스님의 감사 멘트가 나온다.

이승에서 깊은 인연을 맺은 도반들 간 서로의 안녕을 빌고 서로 부처되기를 통해 '도반이 곧 부처'임을 생각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 바란다는 내용이다.(눌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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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산스님.



마음속 남은 한 줌의 찌꺼기까지 오대천 맑은 물에 씻겨내려간 듯하다. 청중비구니 선문스님께서 그동안 잘 따라와 준 데 대해 감사의 마음으로 도반들에게 삼배를 하신다. 도반들도 맞절로 예를 갖춘다. 내 업장이 녹아내리는 듯하다. 업을 더 쌓지 않는 법을 배우고 싶다. (서로 부처되기 선문스님과 도반들 간 감사의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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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부처되기 선문스님과 도반들 간 감사의 절





■ 22일차 마지막 날,부처님께 다가가는 길. 3천배

7월 22일(일) 수행 마지막 날.

'철야정진, 부처님께 다가가는 길. 3천배를 하다.

수행 마지막 날이다. 스님들께서는 이날까지도 '마음을 다잡으라'시며 묵언을 주지시켰다.

마지막 수업은 원주스님. 가장 인간적이고 도반들의 가슴을 관통하는 강의로 휘날레를 장식했다. 도반들의 강의 평도 높았다. 신선하고 참신한, 살아있는 이야기에 감동한 듯하다.

그리고 피자를 보내 주셨다. 고구마가 든 피자와 콜라는 젊은 도반들과 여행자님들에게 인기 만점인 맛있는 음식이다. 이틀 전 요양원 봉사 때 컵라면과 김밥을 먹고 인체가 적응하지 못해 밤새 속이 편하질 않았는데, 도반들은 두 조각 정도의 피자를 맛있게 그러나 겨우(?) 먹었다. 20일 동안 나물과 한술의 밥만 먹었으니 위장이 적응할 리 없다. 남 행자님들은 졸업하면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 (피자공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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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공양.



이날 자자(전체회의)를 통해 동문회 회장 선출 및 선배 동문인사가 있었다. 전국 각 지역 동문회장님들이 참석해 후배들의 졸업을 축하하고 환영했다.

우리 동기회장은 그동안 우리 도반들의 반장을 맡아 묵묵히 궂은 일들을 도맡아 하며 쉬지 않고 봉사하셨던 1번 성안(盛安) 행자님이 선출됐다. 성안 행자님은 도반들 중 첫 출가자가 되셨다. (속편 행자님들 이야기에)

오후에는 전 도반들에게 한글반야심경, 무상게, 이산혜연선사발원문등을 외우는 시험을 본다. 못 외워도 방법은 없다. 단 외우는 도반들에게는 스님의 선물이 주어진다.

저녁 공양 후 스스로 반성하며 부처님 앞에 삼배로 반성하는 의식을 가졌다.

이후 9시부터 대웅전에서 철야정진으로 3천배를 시작한다.

50분 절하고 10분을 휴식한다. 일사분란을 유지하고 중간에 지침과 쓰러짐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사전 선발된 도반들의 죽비에 맞춰 시작됐다.

새벽 4시까지 7시간을 용맹정진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내가 진정 좋아하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에게 그동안의 감사를 표하고 싶다.

나는 수행기간 하루도 빠짐없이 주변 사람들과 가족, 친지, 동료, 그리고 먼저 세상을 떠난 그리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왔다.

그 마지막을 3천배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첫 시간은 가족 친지를 위해, 두 시간째는 먼저 세상을 떠난 그리운 이와 지인들을 위해 천도하는 마음으로 지장보살을 정근했다.

매 시간 휴식시간에는 자원봉사자들께서 과일과 두유, 초코파이 등을 준비해 주셨다. 이 공덕은 향후 후배 기수들의 수행 및 사찰행사 때 자원봉사로 갚아야 한다.

세 번째 시간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지인들의 이름을 부르며 건강과 건승을 기원했다.

철야정진을 마친 새벽 4시까지 월정사 적광전(대웅전)은 이생 행복을 찾아 뭇 사람에게 되돌려 주려는 공덕을 쌓기 위한 스님, 단기출가 행자들과 재가불자들이 3천배를 향해 부처님께 절을 올리며 외치는 간절함이 목탁소리와 함께 퍼지고 부처님의 향기로 가득했다.

철야정진이 끝난 4시부터 같은 대웅전에서 새벽예불이 시작됐다. 이후 아침공양과 몸과 마음을 씻은 후 8시 졸업식이 거행됐다.

그리고 그리운 가족들과 재회했다. (졸업식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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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배.



불기 2562년 7월 23일. 나는 성설(盛說)을 법명으로 '오대산 월정사 단기출가학교 52기 과정'을 수료하고 졸업장을 받았다. (졸업식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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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월정사 단기출가학교 52기 과정 졸업식.





단기출가를 마치며 잠시 되돌아 봤다.

출가, 천상의 즐거움과 보람은 이런 고통을 거쳐야 닿을 수 있는 곳일까? 다시 중생의 길로 들어가면 이 시절이 그리울까. 그동안 직장생활은 오로지 생존을 위해 앞만 보고 살아온 시절이었다. 결혼 후 아이 낳고 기르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지만 가족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도 크다. 스님의 말씀대로 아내와 아이들에게 108배를 하고 싶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크게 즐기며 살자, 우리는 광음천의 신들처럼 즐거움을 먹으며 살자'. 법구경 말씀이다.

내려놓고 내려놓은 후 또 내려놓고 내려놓으면 어떻게 될까. 나를 보는 지름길일까.

세상 인연 끊고 절로 들어온 인연들의 삶이 힘들다 한다. 마음은 천국이겠지만… 지장암 지중스님(비구니)도 우리가 부럽다 하셨다. 자신의 세상을 살며 한 달 동안 출가할 수 있는 용기와 여유가 부러우셨나 보다. '세상 사는 사람 중 고통 없는 이 단 한 사람도 없다'고 그러니 중생의 삶도 보살의 삶도 다 한 세상 사는 방법 아니겠는가. 짜증 낼 일도 없다. 슬퍼할 일도 아닌듯하다.

고민도 해봤다.

'잠 못 드는 사람에게 밤을 길고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은 멀듯이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이에게 생사의 밤길은 길고 멀어라'. 악한 말을 하지 마라. 그 저주의 말은 그대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법구경.

남에게 원하지 않은 비판과 비난이 다가올 때 어떻게 대처할까. 난 당신의 욕을 받지 않겠다. 되돌려 드리니 당신 스스로 참고하시길 바라며 먼저 스스로를 잘 살펴보시길 바란다.

분노의 말은 고통을 불러오며 그 보복은 결국 그대 자신에게로 되돌아 온다. 하지만 때로는 적극적 대응이 최대한 방어이고 자신을 돌봄이라고 생각한다. 아픈 내 마음 내 스스로 보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단기출가 수행중 스스로 중생3계(衆生3戒)를 만들었다. 내 탓이오(묵언과 참회진언으로 스스로를 다잡는다), 놔 버리면 산다. (죽음으로 가는 동아줄을 놓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산다), 난 아무것도 없었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자)등이다.

6월 12일 단기출가학교 합격자 발표 후 회사와 일부 지인들께 의논 및 고지하고 월정사 단기출가학교에 신체검사서를 제출했다.

회사로부터 휴가를 받고 힘든 것은 내 마음이었다. 삭발과 한 달여 기간을 이겨낼 수 있을까?

10여 년 전 둘째 아이의 아토피 치료를 위해 인연을 맺은 월정사. 하안거 중이시던 스님과 차담을 하며 시작된 인연의 스님이 있다. 내 정신적 지주이신 성묵스님(원주 치악산 입석사 주지스님). 단기출가 전 스님과 비오는 치악산 입석대에서 밤을 보내며 간접 면접에 통과했다.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며칠 안 보면 아빠가 보고 싶을까? 삭발한 아빠의 모습이 사랑하는 이들에겐 어떻게 비춰 질까. 하지만 다 부처님의 뜻이다. 자신있게, 여한없이 수행하자.



졸업식장에 찾아오신 성묵스님과 새벽에 엄마와 함께 월정사를 찾아온 아들을 만났다. 핸드폰과 지갑등 사물을 찾아 교육장을 나오기 전 스님들께 인사를 했다. 무섭기만 하던 청중스님들이 너무도 평온하고 인자하신 모습으로 변해있다. "행자님 수고하셨습니다". 하며 내 두 손을 잡아주신다. 스님들께 부처님의 향기와 온기가 느껴진다. 또 순간 두 눈에 눈물이 고인다.

단기출가를 마치면 사람이 바뀔까? 크게 바뀌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자현스님 말씀대로... 단지 변화의 전환점은 되지 않을까. 분명 변화는 있을 듯 하다.

글·사진/김환기기자 kh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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