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사] 보궁에선 생사해탈, 문수전에서는 주인의 길 설파(불교신문) 201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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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06-16 16:17 조회8,712회 댓글0건본문
보궁에선 생사해탈, 문수전에서는 주인의 길 설파 | ||||||||||||||||||
제92차 평창 상원사 순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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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전국법등에서 출발한 제92차 108산사순례버스는 오전 10시쯤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상원사 주차장에 닿았다. 제일 먼저 눈에 와 닿은 것은 거대한 바윗돌에 새겨진 ‘적멸보궁 상원사’라는 황금색 편액이었다.
불가(佛家)에서 적멸(寂滅)이란 번뇌의 경지를 벗어나 생사(生死)의 괴로움을 끊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보궁(寶宮)이 더해지면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산사를 뜻하는 불교성지가 된다.
상원사로 오르는 숲길은 계절의 여왕 오월답게 맑은 공기가 가득하고 꽃을 달고 있는 나무들을 보니 마음이 그지없이 상쾌하였다. 다람쥐는 많은 인파에도 무심한 듯 사람이 다가가도 그저 제 먹을 것만 열심이다. 그렇게 적멸의 산사는 고즈넉하게 우리 108산사순례자들을 즐겁게 맞이하고 있었다.
상원사는 643년 신라의 고승 자장(慈藏)율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부처님의 사리와 정골(頂骨)을 나누어 봉안한 5대 적멸보궁 중의 한곳이다. 경남 양산 통도사(通度寺),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사자산 법흥사(法興寺)가 바로 오대적멸보궁이다.
적멸보궁은 법당이 아니라 예배 장소로 건립되었기 때문에 불상을 따로 안치하지 않았으며 전(殿)이나 각(閣)의 상위 개념으로 여겨 따로 불상을 마련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한 주지해야 할 사실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문수보살상을 모시고 있는 문수 신앙의 중심으로 보천, 효명 두 신라 왕자가 중대 비로봉에서 1만 문수보살을 친견하였다고 하며, 왕위에 오른 효명태자(성덕왕)가 재위 4년 만인 705년 지금의 상원사 터에 진여원(眞如院)을 창건함과 동시에 문수보살상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세조와 문수동자에 얽힌 이야기이다. 세조는 등창을 고치기 위해 계곡에서 몸을 씻다가 문수동자를 친견하고 그것을 토대로 문수보살 상을 조성하였는데 현재 국보이다.
황금불상과 평화의 불 모시고
절 마당에 들어섰더니
문수보살님이 우리를 맞고…
주지 스님은 회향 길 순례단에
북녘동포 공양미 26가마 보시
따라서 적멸보궁은 본래 언덕 모양의 계단(戒壇)을 쌓고 불사리를 봉안함으로써 부처님이 항상 그곳에서 적멸의 법을 법계에 설하고 있음을 상징하던 곳이었다. 진신사리는 곧 부처님과 동일체로, 부처님 열반 후 불상이 조성될 때까지 가장 진지하고 경건한 숭배 대상이 되었으며 불상이 만들어진 후에도 소홀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주지 인광스님과 함께 부처님 진신사리가 든 황금불상과 평화의 불을 모시고 상원사의 절 마당에 들어섰더니 문수전이 제일 먼저 우리들을 맞이했다. 법회에 들어가자 한차례 신선한 오월의 바람이 불어왔다. <천수경>을 시작으로 안심법문과 사경을 거쳐 108참회기도에 들어갔다.
“불성(佛性)은 일체의 번뇌나 망상이 없고 분별심 없는 마음임을 명심하겠나이다. 내가 가진 본래의 불성을 자각하여 부처님과 같은 반야의 지혜로 일상의 모든 일을 대하겠나이다. 자연 그대로인 불성을 깨쳐서 이 자리의 내가 나의 주인이 되겠나이다. 언제나 머무는 곳에 내가 주인이며 그곳이 바로 극락임을 알겠나이다(108참회문 67~71절).”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말이 있다. 어디에서나 주인 노릇을 하라는 말이다. 우리는 주인 노릇보다 종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다. 108산사순례에 와서 열심히 기도를 올리는 이유도 바로 내가 나의 주인임을 알기 위해서다.
스님과 회원들이 함께 참회문을 읽으며 108배를 올리는 시간은 세속의 모든 번뇌와 업장을 털어내고 자신을 밝히는 순간이며 힘들고 바쁜 세상에서 최상의 위안을 얻는 일이다. 때문에 그 어떤 순간보다도 진실하고 경건해야 한다. 더구나 시간이 날 때마다 108참회문을 읽으면 스스로 무한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산사순례 그 이전에는 일이 바쁘거나 일상에 빠져 대다수가 자신을 돌이켜 보는 참회의 시간을 가져 본적이 없을 것이다. 사람이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도 하나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나는 법문을 이어갔다.
“이젠 108산사순례도 92차입니다. 참으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돌이켜 보면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이 절실한 순례의 길에서 저는 또 하나의 감동을 느낍니다. 우리 회원들 중에 한 노 보살님이 지난 표충사 순례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떴습니다. 그 분께서 이루지 못한 108염주를 현재 그분의 따님이 대신하여 지니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연이 아니겠습니까. 새삼 저는 그동안 우리가 순례하여 온 길과 그 세월이 참으로 길고 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한 사람의 순례자가 남을 때까지 여러분과 함께 순례를 다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결코 혼자 순례를 떠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가고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흘간의 법회 중 토요일에 ‘일심광명’ 무지개가 하늘에 장엄하여 우리 회원들은 환희심이 솟았다. 순례 법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 회원들은 농촌사랑 직거래장터에 들러 강원도에서 나는 특산물들을 샀다.
또한 다문화가정 인연 맺기와 군장병을 위한 초코파이 보시, 소년소녀가장 장학금 수여, 효행상 시상, 108약사여래 보시금 전달 등 다양한 행사를 펼쳤다. 마지막 날 주지 인광스님은 북녘동포돕기 300석 공양미 모음에 40kg, 26가마를 보시해 주셔서 고마웠다.
■ 108산사순례를 맞이하며 - 상원사 주지 인광스님
법연으로 이뤄진 회원들
보궁참배 그 자체로 큰 공덕
‘선묵혜자스님과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원들이 오대산 상원사에서 기도 법회를 봉행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상원사는 신라 성덕왕 4년 신라의 두 왕자에 의해 오대산 중대에 창건되었으며 신라의 대국통이었던 자장율사가 개산한 뒤로 오대산의 불교성지 안에 있습니다. 또한 문수신앙의 중심지이며 오대산의 주봉인 비로봉 아래 자리 잡고 있어 중대의 적멸보궁을 참배하러 오시는 불자들의 귀의처이며 스님들의 수행처입니다.
불교에서 기도의 의미는 소원을 비는 것이 아닌 자신이 발원하는 다짐의 서원(誓願)이라 할 수 있는데 여러분이 이른 새벽에 일어나 매달 순례를 떠나서 기도를 하는 것도 하나의 수행이며 법연(法緣)없이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선묵혜자스님이 회주로서 5000여 명의 회원들을 이끌고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추우나 순례 와서 선행과 보시 등 대사회적 활동을 펼치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큰 공덕을 쌓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그동안 한국불교 포교역사에 있어서도 큰 획을 그어 왔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상원사에 와서 문수보살의 지혜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큰 복덕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인연은 그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인연공덕으로 하시고자 하는 모든 일들이 원만 성취되고 ‘선묵혜자스님과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순례기도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 불교신문·선묵혜자스님과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순례기도회 공동기획
[불교신문3017호/2014년6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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