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스님] 아동복지시설 충주 진여원 원장 혜원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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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9-01-10 08:50 조회5,995회 댓글0건본문
포교하려 애쓰기 보다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배워가며 그들과 공감대를 넓혀가는 헤원스님이 가장 뿌듯할 때는 일반 학생들이 진여원에 놀러오고 싶다는 얘기를 들을 때다. 신재호 기자 |
25명의 직원들과 ‘보현행자’ 자처
아이들과 소통 위해 게임 배우고
약속 이행에 대한 보상은 꼭 지켜
“자비는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라
몸에 습관화 돼야 하는 불교수행”
“타종교에 비해 아직 열악하지만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걱정 덜고
용기 가질 수 있게 운영하고 싶어“
눈이 조금만 와도 더 춥게 느껴지는 곳이 있다. 충청북도 유일의 아동복지시설이 있는 충주시 동량면 화람양목길 ‘진여원’. 여러 가지 이유로 가족과 함께 살기 어려운 어린이 청소년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다. 1995년 미인가 복지시설로 출발했지만 2002년 아동복지시설로 거듭나며 새로운 공동체로 주목받고 있다. 지금은 갓 돌이 지난 어린아이부터 대학생까지 31명이 25명의 직원들과 한가족이 되어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다.
내 자식 하나 올바로 키우기 힘든 요즘 이같은 시설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이들을 통해 오히려 행복을 찾는다는 혜원(慧原)스님이다. 대학 졸업 후 만행하듯 전국을 두 바퀴쯤 돌다 들른 원주 성불원이 인연의 시작이다. 이곳 진여원의 모태가 되는 사회복지법인 성불복지회에서 만난 은사 현각스님과의 생활이 출가수행에 있어 하나의 이정표가 됐다. 무슨 이유에선지 한때 이곳을 벗어나 또다시 만행 아닌 만행을 떠났지만 7년여 만에 다시 돌아와 운영지원 사찰 화암사가 있는 충주 진여원에서 재출가하며 책임자가 됐다.
“진여(眞如)는 범어로 타타타(tathata), ‘깨달음’을 의미합니다. 모든 현상에 있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 차별을 떠난 그대로의 본성을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변하지 않는 궁극적 진리, 있는 그대로 차별받지 않는 의미로 이곳을 ‘진여원’이라 하지 않았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난 12월12일 충주댐 선착장을 지나 찾아간 진여원은 하루 전 내린 눈으로 온통 눈꽃세상이었다. 눈길을 달려 본사인 월정사에서 노스님(만화희찬) 다례를 모시고 온 스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스님의 모습은 활기찼다. 늘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다 보니 일부러 그렇게 보이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전혀 안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 국가 가운데 아동복지예산 꼴찌에 머물러 있는 나라의 시설장으로는 쉽지 않은 자세다. 이유는 간단했다. 책임감이었다. 스님은 조계종 교정교화전법단장으로 누구보다도 활발한 교정교화활동가이기도 하다. 54곳 교정교화시설, 10곳의 소년원, 2곳의 외국인보호소 등을 오가며 느낀 것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 어느 가정을 막론하고 지금 데리고 있는 아이들을 잘 키우면 교정교화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줄여갈 수 있다는 생각이 그 가운데 하나다.
“가장 힘든 것은 아이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것입니다. 학대를 받다가 이곳에 들어온 아이들은 육체적 성장뿐만 아니라 지적 발달까지 멈춰버리기도 합니다. 세 살이 되도 말을 못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강압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떼를 쓸 줄도 모릅니다. 어리광부리고 떼도 쓰고 해야 정상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여느 가정의 아이들 못지않게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싫다고 거부하던 아이도 20~30분 달래며 안아주고 보듬어주다 보면 ‘내가 기댈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는지 어느 새 가볍게 안겨있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아이들과 철없어 보일만큼 함께 놀아주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혜원스님은 진여원에 오락기까지 들여놓을 만큼 아이들의 정서안정과 자존감 회복을 위한 일이라면 만사를 제켜놓을 만큼 열정적이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게임은 웬만한 중고생들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공부 얘기는 아이들의 말문을 오히려 막아 버리기 때문에 모르는 게임은 일부러 아이들에게 물어가면서 배우기도 한다. 아이들과 공감대를 넓혀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가운데 하나가 게임이기 때문이다. 약속을 잘 지키고 학업성적이 오르는 학생들에게는 그만한 포상을 하기도 한다. 2만원, 3만원 씩…. 마트에 나가 자유롭게 쇼핑할 기회를 만들어준다. 후원금이나 지자체 지원금 등은 통장으로 관리해 퇴소 후 생활정착금으로 활용할 수 있게 이끌어준다. 생활 속에서 자립심을 키워주는 생활습관을 위해서다. 지난 10월에는 오대산문화축전 소리공양대회에서 1등상을 받은 원생들에게 2박3일 경주여행을 시켜주기도 했다. 상금도 200만원에 사비가 200만원이나 더 들어갔는데 스님은 기쁘기만 했다. 보호자가 1대1 정도로 동행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 학교의 여행보다는 훨씬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데도….
“제 개인돈도 들어가지만 열심히 하면 포상이 따른다는 그런 동기부여가 아이들과의 소통을 더 활발하게 하고 자존감도 높여줍니다. 성적이 오르면 용돈을 올려주고, 개인용 컴퓨터를 구비해주고, 대외 활동에서 상을 타면 여행을 시켜주는 등 약속에 따른 포상이라는 동기부여가 있다 보니 아이들은 그런 것을 자랑으로 삼기도 합니다.”
사회에 진출한 원생들이 친정 찾듯 자연스럽게 진여원을 찾아오는 이유도 평소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공감대 덕분이다. 설이면 세뱃돈을 한 푼이라도 더 만들어주기 위해 인연 있는 사찰을 찾아 나서고 그들이 다시 각자의 생활전선으로 돌아갈 땐 여느 가정의 부모 못지않게 밑반찬을 바리바리 챙겨 집까지 데려다 주기도 한다. 경제 저성장에서도 그나마 후원금은 유지돼서 다행이라 하지만 아이들 요구는 경제사정에 반비례한다고 한다.
시 지원 예산은 말 그대로 인건비 식대 등 운영실비로 쓰인다.
“식사량만하더라도 엄청납니다. 한창 클 나이의 중고생들은 보통 어른들의 4배를 먹기도 합니다. 칭찬도 하고 일반 학생들에게 뒤쳐지는 게 안타까워 고기라도 한 번 사 먹이려면 1인당 5~6인분은 각오해야 마실을 나갈 수 있습니다.”
“월급까지 털어 넣어도 부족할 때가 많다”면서도 스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이들의 해외여행을 위해 수시로 인터넷검색을 한다. ‘땡처리 여행 프로그램’을 찾아내 비용은 아끼면서 아이들의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서다. 결과는 웬만한 중소도시 가정의 학생들도 꿈꾸기 힘든 해외여행을 과감히 시도해 아이들의 자존심을 한껏 높여준다. 팍팍한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학교 가서 어디어디 다녀왔다고 자랑하고, 그 얘길 듣고 진여원에 놀러오고 싶다는 친구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아이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아이들의 자존감을 좀 더 높여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서핑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게 된다.
다만 아쉬운 것은 후원의 3분의2는 불교계에서 유지하지만 자원봉사만큼은 타종교인들이 월등히 많다는 점이다. 때문에 부처님오신날에는 별 행사가 없어도 크리스마스 때는 이벤트를 위한 후원자나 자원봉사자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대놓고 종교 활동을 할 수 없는데다 대표가 스님이다 보니 불교행사는 일부러 삼갈 정도로 조심한다. 31생불(生佛)의 잠자리 살피고, 학교 보내고, 상급학교 진학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게 스님에겐 조석예불보다 더 먼저일 때가 많다. 무표정한 아이들의 고민을 듣기 위해서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되고, 괜찮다고 피하는 아이들의 아픈 곳을 찾아내 보살펴주려면 약사여래부처님이 돼야 한다. 스님에게 하루 24시간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24시간 봉사하는 직원들에게는 친절한 상담사이자 그들과 함께 아이들을 위한 보현보살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스님은 “한다고 하지만 정말 아쉬운 것은 심리, 정신과치료에 대한 지원”이라고 한다.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꼭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분야이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전문분야라 자원봉사 발길도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스님은 늘 스스로 물으며 마음을 다진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고 나서 왜 45년이나 행각을 했겠습니까? 깨달음은 하나의 수단이었을 겁니다. 왜 대승보살사상이 생겼겠나 생각해봅니다. 깨달음의 필수조건이 자비행이 아니겠나 생각합니다. 자비행을 하다보면 깨달음은 저절로 오지 않겠나, 저는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혜원스님. 소통은 상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할 때 시작된다. |
■ 혜원스님은 …
원주 성불원 현각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2003년 보성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2009년 고산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동국대 불교학과와 동 불교대학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봉암사 등에서 8안거를 성만했다.
사회복지법인 성불복지회 아동복지시설인 충주 진여원 원장과 겸 화암사 주지, 조계종 교정교화전법단장으로 활동하면서 법무부장관 표창(2006년), 조계종 총무원장 표창장(2016년) 등을 수상했다.
혜원스님에게는 “아이들이 스승이고, 부처”이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그들을 돕는 것은 곧 부처님 공양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사회의 ‘작은 부처님’이 모여 있는 충주 진여원은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걱정을 덜고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그런 시설로 성장하고 있다. “자비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몸에 배 습관화 되는 수행”이라는 스님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불교신문3455호/2019년 1월12일자]
충주=김선두 기자 sdkim25@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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