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경사] 태백산 르포...찬란한 눈꽃에 취하고 일망무제 조망에 넋 잃고 (2월21일-월간 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7-03-09 16:57 조회7,970회 댓글0건본문
유일사주차장~천제단~문수봉~당골광장 11.3km 산행
승용차가 영월군에 접어들 때까지만 해도 산은 잿빛 늦가을 분위기에 갇혀 있었다. 상동면으로 진입할 때는 창문을 열어도 바람이 차지 않다 싶을 만큼 날씨가 포근했다. 화방재로 올라서는 사이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산릉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밤하늘에서 내린 보석 비를 맞은 듯했고, 설릉은 코발트빛 하늘과 어우러져 더욱 찬란했다. 해발 1,500m대 백대두간이자 태백산의 겨울 참모습이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들떴다. 페달을 깊이 밟아 달렸다. 어평재(화방재)를 넘어 다가선 유일사주차장은 평일인데도 시골장터처럼 어수선했다. 대형버스와 승용차가 꽉 차 있고 팔도의 등산인들이 산 오를 채비를 갖추느라 손놀림이 바빴다. 신발끈과 아이젠 밴드를 꽉 묶는 모습은 산릉의 보석을 먼저 차지해야겠다는 듯 진지하고 도전적이었다.
“대박이야 대박, 역시 태백산이야, 서울에선 올 겨울 눈 구경을 제대로 못 했는데 말이야. 스케줄 수정! 주변 취재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무조건 산행이야. 눈꽃 따야지요.”
어둠속 집을 나선 일행이 승용차 한 대를 꽉 채운 채 잠실역을 출발해 3시간 넘게 달려오느라 온몸이 벅적지근한데도 보석처럼 빛나는 태백의 산릉은 피로를 날려버리게 하고, 목표를 정해 주면서 다리에 힘이 들어가게 했다.
“널 보러 왔어, 사랑해”
눈 덮인 유일사 진입로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짙푸른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자란 참나무와 낙엽송은 가지 끄트머리에 눈꽃을 피운 채 반짝였고, 그 풍광에 겨울 나그네들은 순간순간 탄성을 지르며 멈춰 섰다. 산객들의 마음은 10대 소년으로 돌아간 듯 흥분됐다. 우리뿐 아니었다. 젊은 산객, 중년 산객 할 것 없이 얼굴에 해맑은 웃음꽃이 피었고, 이미 하산길에 들어선 이들 역시 얼굴에 만족감이 넘쳤다.
산길은 더욱 흥겨워졌다. 마디마디 굵은 혹을 단 참나무는 몸을 이리저리 뒤틀면서도 어젯밤 내린 눈으로 치장한 채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고,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은 저마다 반짝이는 눈꽃과 함께 푸르름 잃지 않은 채 겨울을 즐기고 있었다. 산객들 또한 멋진 포즈를 취하며 사진 찍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높이를 더할수록 풍광은 더욱 화려해진다. 군락을 이룬 주목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눈꽃을 피운 채 겨울산의 진풍경을 자아낸다.
“으앙~, 널 보러 온 거야. 고마워, 사랑해.”
눈꽃 산행의 즐거움은 중년 여인의 애교스런 퍼포먼스로 극에 달했다. 고향 친구들과 함께 태백산을 찾은 그녀는 정상 장군봉(1,567m) 직전 주목 군락지에 닿는 순간 느닷없이 눈꽃 핀 주목 한 그루를 향해 달려가 껴안더니 사랑을 고백한다. 매년 겨울이면 태백산을 올라 껴안는 나무였다. 그녀는 “이 나무에서 얻은 기운으로 올 한 해 열심히, 아름답게 살아갈 생각”이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겨울 태백은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멀리 부산서 온 부부 등산인이 있는가 하면, 영양에서 어린 두 자매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 단합대회 차 온 직장인 등 다양한 산객들이 태백의 산릉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태백산은 이렇게 누구든 받아 주고 껴안아 주는 산이었다.
산릉의 경사는 점점 죽어들어 힘은 덜 들지만 정오의 햇살은 눈꽃을 눈밭으로 떨어뜨려 아쉽게 한다. 하지만 장군봉에 올라서는 순간 새로운 풍광에 가슴 설렌다. 정면에 천제단(天祭壇)을 등에 얹은 영봉(靈峰·1,560m)이 봉긋 솟아오르고, 그 왼쪽으로 문수봉(文殊峰·1,517m)으로 뻗은 능선 또한 눈꽃 세상을 빚어놓고 있다. 그뿐인가, 영봉 뒤쪽으로 뻗은 백두대간은 어느 순간 오른쪽 남서향으로 방향을 튼 다음 소백산을 떠받들고, 등 뒤로 함백산(1,572m)에서 매봉산(1,305m)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은 산봉에 거대한 통신시설물과 풍력발전기를 얹고 있음에도 대간다운 당당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북으로 뻗어 오르고 있었다. 그 뒤로 두타산과 청옥산은 구름을 뚫고 머리를 내민 채 ‘나도 백두대간이오’ 부르짖는 듯했다.
장군단(將軍壇) 안에 들어가 촬영하던 정정현 기자는 술냄새에 취했는지 얼굴빛이 벌겋다. 장군단은 무속인들이 제를 올리며 바닥에 부은 막걸리 냄새가 진동했고, 그 냄새에 막걸리파 정정현 기자조차 취한 듯 표정을 지은 것.
부드러운 산릉 따라 천제단을 얹고 있는 영봉에 다가선다. 뒷동산처럼 봉긋 솟은 산봉 위의 천제단 안의 ‘한배검’ 빗돌 앞에선 무속인들이 정성껏 제를 올리고, 그들이 자리를 뜨자 기다렸다는 듯 등산인들이 차례로 다가와 올 한 해 회원 가족 모두에게 만복이 깃들고 안전한 산행이 이루어지기를 빌고 또 빌었다.
영험한 기도처 천제단
무속(巫俗)의 성지(聖地)인 태백산을 상징하는 천제단은 2,000년 넘게 기도처로 이용됐을 만큼 영험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도 기도인들이 거의 매일 찾고, 정상 아래 망경사(望景寺)에도 기도객들이 북적거린다. 태백문화원 또한 이렇듯 영험한 산의 기운을 오래오래 내려 받기 위해 매년 개천절 낮 12시 대한민국 천제(天祭)를 지내고 있다.
“아니, 아무리 우리가 머슴 신세라지만 밥은 먹이면서 부려야 하는 거 아냐! 이른 아침 우동 한 그릇씩 먹이고 너무하는 거 아냐?”
오전 8시경 고속도로휴게소에서 우동 한 그릇으로 아침을 때우고 오후 2시가 되도록 아무것도 먹은 게 없으니 툴툴대는 것도 당연한 일. 바람을 피해 천제단 기슭 주목 숲 눈밭에서 주차장 가게에서 사온 컵라면과 간식거리로 허기를 메우는 사이 일행의 얼굴은 웃음꽃이 피었다. 정정현 기자가 10여 년 전 천제단 제물로 허기를 때운 추억과, 또 그 몇 해 뒤의 한겨울 섬뜩했던 기억을 떠올렸던 것. 그 얘기에 배병달씨는 “나는 안 먹었어. 나는 양반이거든” 외쳤다.
찬란한 눈꽃에 취하고 일망무제 조망에 넋 잃고
점심 먹는 사이 천제단 부근에 모여 있던 많은 등산객들은 사라져 버렸지만 남동쪽이 터지면서 국망봉에서 비로봉을 거쳐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소백산릉이 한눈에 바라보이고,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산릉은 다시 눈꽃으로 환하게 빛나며 산객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태백산에는 주목만 눈꽃세상을 누리고 있는 게 아니었다. 철쭉 또한 눈꽃을 피우고, 그 나무들이 모여 커다란 눈꽃 숲과 눈꽃 터널을 이루어 또 하나의 눈꽃 세상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러다 흰 눈 뒤집어쓴 주목 한 그루가 나타나 산을 한층 더 오묘하게 꾸며 주었다.
“오늘 여기서 주무시게요?”
3개의 제단 가운데 규모가 가장 작은 하단(下壇)을 지나 계단을 내려선 다음 백두대간 갈림목에서 문수봉으로 향하다 올라선 부쇠봉(1,514m) 정상에는 산객 홀로 커다란 배낭에서 짐을 풀고 있다. 오늘 예서 밤하늘의 별을 벗 삼은 채 겨울 산의 낭만을 즐길 생각인가보다. 그럴 만한 곳이다. 태백산이 둥근달이 떠오른 듯 바라보이고, 백천계곡 뒤로 달바위봉이 진안 마이산처럼 쌍바위봉을 쫑긋거리는가 하면,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의 주맥과 지맥들이 겹을 이룬 채 일렁이는 모습은 머물고픈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풍광인 것이다.
홀로 산객의 자유로움을 부러워하며 눈꽃 터널을 거쳐 바위 꽃 문수봉에 올라서자 이번엔 중년 여인이 홀로 태백의 겨울 풍광에 취해 있다. 커다란 돌탑 다섯 기가 세워져 있는 문수봉은 무속인들이 천제단에서 제를 올리고 산을 내려서기에 앞서 다시 한 번 천제단을 바라보며 기도를 드린다는 영험한 곳이다.
너덜겅으로 이루어진 소문수봉(1,466m)을 지나 갈림목(문수봉 0.5km, 당골광장 3.5km)에서 제당골로 내려선다. 제당골은 무속인들이 얘기하듯 모든 신들의 세계답게 태곳적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여기에 곧게 자란 거제수나무들은 겨울 숲을 한층 밝게 밝혀 주고 있다.
흰 눈 두텁게 덮인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는 사이 어느 순간 거제수, 참나무 등이 골짜기 안에 그림자를 길게 뻗고, 우리도 뒤질세라 그림자를 그 옆에 길게 드리운다. 골짜기가 부드러워지는 지점에 이르자 샘이 나타나고, 또다시 거제수나무 군락을 지나 목교를 건너서자 이제 흰 눈 사이로 제법 많은 물이 흘러내린다.
천연림 우거진 숲, 맑은 기운 담긴 물이 흘러내리는 제당골 역시 그 이름답게 무속인들의 기도처였다. 산을 빠져나가기 전 돌로 쌓아 만든 제단에는 여러 명의 무속인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일행은 이들에게 방해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발소리를 죽인 채 당골광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기도처를 지나고 낙엽송 숲을 지나 골짜기를 빠져나가자 앞이 환해졌다. 영험한 기운에 감싸인 태백의 산릉에 만발한 눈꽃을 만끽하고 하산하는 산객들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반짝였다.
설화 풍경에 조망 더해지는 종주 코스
유일사 주차장은 태백산 산행기점 중 가장 높은 해발 약 800m, 정상까지 약 770m를 더 올라야 하지만 차량통행이 가능(사찰 차량에 한함)한 유일사 진입로 구간이 2.3km에 이르고, 이후 장군봉까지 2시간이면 오를 수 있다. 장군봉에서 영봉을 지나 소문수봉까지도 오르내리막이 크게 없는 구간이다(약 2시간). 소문수봉을 지나 갈림목(문수봉 0.5km, 당골광장 3.5km)에서 왼쪽 길로 내려서면 제당골로 당골광장까지 1시간이면 넉넉히 하산한다. 약 11.3km.
천제단에서 체력이 약한 사람은 단종비각과 망경대를 거쳐 당골로 하산한다. 문수봉 직전 갈림목에서 왼쪽 길로 들어서면 당골로 내려서고, 문수봉과 소분수봉 사이 갈림목에서 왼쪽 길을 따르면 제당골로 내려선다.
태백 지역 눈 소식이 들리면 바로 다음날 산행해야 최고의 눈꽃을 볼 수 있다. 단, 폭설 직후 어평재(화방재)로 진입할 경우 상동 이후 눈길을 조심해야 하며, 고한 방향에서 접근할 때는 두문동재를 빠져나간 다음 내리막 구간을 주의해야 한다. 꼭 아이젠을 지참하고, 방풍보온의류를 챙기도록 한다.
교통
서울→태백 동서울터미널에서 20분~1시간 간격(06:00~23:00) 운행. 2시간30분 소요. ARS 1688-5979. www.ti21.co.kr.
대구 북부터미널에서 1일 7회(07:00~19:25. 4시간 40분), 원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일 19회(07:00~20:30, 4시간),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일 21회(07:32~19:50, 2시간30분) 운행.
태백행 무궁화호 열차는 청량리역에서 1일 4회(07:05, 09:10, 14:13, 23:25) 운행. 3시간30분~4시간 소요, 1만5,300원.
문의 1544-7788.
태백→당골 시외버스터미널(1688-3166)에서 1일 24회(07:38~22:25) 운행. 일반 1,200원, 좌석 1,500원.
태백→유일사 입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화방재행 영암운수 노선버스가 1일 6회(06:25, 07:00, 07:55, 12:20, 18:00, 22:10) 운행.
태백시내 각 방면 버스는 ‘www.버스타자.com’에서 검색 가능.
택시 당골 약 1만5,000원(할증 구간), 유일사 약 1만6,500원.
문의 태백콜택시 033-552-0808.
자가용 이용 시 중앙고속도로 서제천나들목~38번(5번 공용)국도를 타고 제천을 거쳐 영월로 간다. 유일사 방향으로 갈 경우 석항리 삼거리에서 중동면→상동면을 거쳐 어평재(화방재)를 넘어 접근한다. 태백시내로 가려면 사북과 고한을 지나 두문동재를 빠져나간다.
숙식(지역번호 033)
당골 태백산민박촌은 15동 73실 규모로 지어진 인기 있는 숙소다.
예약은 홈페이지(minbak.taebaek.go.kr)를 통해 받는다. 문의 553-7440~1.
당골광장 진입로 주변에 그린피스회관(552-8612), 산골콘도식민박(553-6622), 한밝뫼식당민박(552-9401), 산골식당민박(554-0888), 청담게스트하우스민박(552-9933) 등이 있다.
태백시 홈페이지(www.taebaek.go.kr)
태백고원자연휴양림 또한 인기 있는 숙박지다. 산림휴양관 7평형 10실, 14평형 2실과 숲속의 집 7평형(4동), 10평형(8동), 27평형(3동)으로 조성돼 있다. 예약은 홈페이지(forest.taebaek.go.kr)를 통해 받는다. 문의 582-744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