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과 효명이 머문 '省烏坪'이 어디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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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수동자 (121.♡.203.43) 작성일08-07-18 15:43 조회6,194회 댓글0건본문
오대산의 성적(聖跡)과 신라 정신태자(淨神太子)ㆍ효명태자(孝明太子)의 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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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왕자가 이 신통변화를 보고서 아침마다 통에 깨끗한 물을 길어다가 차를 끓여 1만 문수보살에게 공양하였고 밤이면 각자가 자기의 암자로 돌아와 도를 닦았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신라사람들은 두 왕자가 머문 곳을 알게 되었고, 성오평(省烏坪)의 이름을 경평(京坪)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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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성인[五聖]을 친견한 신효거사(信孝居士)의 사적.....
“이곳은 살만한 곳입니까.”“서령(西嶺)을 넘어가면 북쪽으로 향한 동네가 있다.”그 말을 마치고서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후에야 노파가 관음보살의 화신인 줄 알았다. 노파의 말에 따라 성오평(省烏坪) 동네를 찾아 자장조사가 일찍이 주석했던 곳에 이르렀다. 그곳이 바로 월정사이다. 그곳에 머문 지 얼마 안 되어 문득 다섯 스님이 함께 찾아와 물었다.“네가 가지고 간 가사 한 폭은 어디에 있는가?”거사가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자 다시 말하였다.“일찍이 깃털로써 사람을 본 것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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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 수결(手訣)1457년 8월 14일 어보(御寶)오대산 아래 10리 거리인 성오평(省烏坪) 동쪽 작은 봉우리에 올라 크게 문무과를 거행하니 이처럼 성대한 일은 일찍이 없었다. 과거를 끝마친 세조는 마침내 대궐로 돌아갔다. 1475년(성종 6) 을미(乙未)에 이르러 영산부원군(永山府院君) 신(臣) 김수온(金守溫)에게 명하여 이를 기록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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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 실린 글을 참조로 하면 현재의 월정삼거리인것 같읍니다.
옆으로 바로 강이 흐르고 큰 평원이 있어서 촌락이 발전 했을 것입니다.
오른쪽으로는 소나무로 덥힌작은 동산이 보이는데 그곳은 만과봉(萬科峯)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조가 상원사에 거둥한 17일 행궁(行宮)에 돌아와서 영의정인 희현당(希賢堂) 신숙주, 이조판서인 자순(子順) 한계희, 호조판서인 천은당(天隱堂) 노사신으로 하여금 문과 시장(文科試場)에 나아가서 참시(參試)하게 했다고 되어 있으니 과거를 봤다는 이야기가 된다.
일종의 알성시(謁聖試)와 같은 것이었으며 그 시험을 치른 장소가 바로 만과봉 일대이다. 이 지방에 전해오는 설화에 따르면 당시 시험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흙 한 줌과 돌을 하나씩 가져오게 하여 쌓은 것이 지금의 만과봉과 같은 동산을 이루었고 그 시험에 참가한 유생들이 모두 만 명에 이를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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