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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오대산에 와야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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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화실장 작성일06-08-26 12:40 조회9,1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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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도쿄대 소장 확인과 환수 활동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환수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올해 들어서다. 문화재청이 일제 약탈 문화재 환수에 큰 관심을 보여온 혜문스님(봉선사 총무)에게 문화재청이 “도쿄대가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 46책을 소장하고 있다”고 공식 확인, 월정사에 통보하고 나서 본격적인 환수운동에 나서게됐다.

 비공식적으로는 이보다 훨씬전인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월정사 관계자에 의하면 서지학회 회장을 역임한 `조선실록 연구서설'의 저자인 배현숙교수(계명문화대학)가 도쿄대의 동의를 얻어 1984년 7월과 1988년 7월 도쿄대학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의 잔본을 확인하고 조사했다. 배교수는 당시 조사를 통해 도쿄대는 관동대지진 이후 지진 피해를 수습하고 난 다음 `소잔본목록(燒殘本目錄)'을 작성했는데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총 46책을 3책 단위로 포갑하여 귀중서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봉선사에서 보유하고 있다가 6^25전쟁 때 분실된 `곤여만국지도’를 찾던 이 사찰의 총무인 혜문스님이 지난 2004년 도쿄대도서관에서 고서(일본 학술잡지) 한 권을 발견했다. 이 책에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 47책이 도쿄대 도서관 귀중서고에 보관돼 있다는 기록있었다. 이에 따라 도쿄대에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이 소장돼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약탈 경위를 추적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문화재청이 혜문스님에게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 46책의 도쿄대 소장을 공식 확인해 준 시점은 `북관대첩비'와 추사 김정희 유품 2,700여점 등 일제 약탈문화재 환수가 국민적 관심사로 대두된 때였다. 북관대첩비는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이 반출해 야스쿠니신사에 보관돼 있다가 지난해 10월 100년만에 환국했으며 올 3월 북한으로 넘겨져 제자리(개성)에 복원됐다.

 일제가 1913년 오대산사고에서 반출, 일본 도쿄대에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을 돌려받기 위한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이하 환수위)'가 공식 출범한 것은 지난 3월3일. 이날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공식 출범식에서는 조계종 4교구본사 월정사주지 정념스님과 25교구본사 봉선사주지 철안스님이 공동의장으로 추대됐으며 김삼웅독립기념관장, 이광재^노회찬국회의원,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이종호 프랑스 국가 과학박사, 김의정 조계종 중앙신도회장, 배현숙교수 등이 참여한 환수위원회가 구성됐다. 또 김원웅^강혜숙 김영춘국회의원과 이이화(역사학자)고구려재단이사를 자문위원, 월정사재무국장 법상스님과 봉선사총무 혜문스님을 간사, 문만기(민족문제연구소)위원장을 비롯한 8명의 실행위원을 위촉했다.

 이들은 출범식 후 바로 성명서를 발표한 뒤 고이즈미 일본수상과 도쿄대 총장 앞으로 보내는 `조선왕조실록 반환요청서'를 주한 일본대사관 측에 전달했다.

 환수위는 요청서에서 “한국과 일본은 불행했던 과거를 잊고 세계문화 발전에 공헌해 온 점에 비춰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이 제대로 돌아올 수 있도록 조치해 줄 것을 간곡히 희망한다”며 “이로써 한^일 관계가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환수위 공동의장인 정념스님은 성명서 낭독에 앞서 “오대산 사고에 보관중인 조선왕조실록을 수호하지 못한 책임을 국민 앞에 참회한다”고 반성하기도 했다.

 또 일본대사관에 반환요청서를 전달하고 나온 노회찬의원은 “일본 측에 조선왕조실록은 일반 예술품과 다른 국가의 공식문서임을 설명했고 일본 측도 이에 동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 환수위는 3월15일 도쿄대를 방문, 제1차 협상을 갖고 정식 반환 요청서를 직접 전달했다. 당시 도쿄대는 환수위가 전달한 요청서를 내부적으로 검토한 뒤 4월17일까지 태도를 밝힐 것을 약속했다. 또 이 방문 때 도쿄대에 소장돼 있는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이 46책이 아닌 47책임을 최종 확인했다.환수위는 4월17일 제2차 도쿄대를 방문해 협상을 가졌으며, 5월2일에는 `조선왕조실록 되찾기 국회의원 모임'이 결성됐다.

 5월27일에는 북조선불교도연맹이 “강탈당한 문화유산을 되찾는 것은 주인의 당연한 권리”라며 “환수위의 애국적 실천에 적극적인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서한을 환수위에 보내왔다.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이 서울대 규장각으로 돌아오게된 것은 지난 5월15일 도쿄대 사토 부총장이 서울대 정운찬총장을 방문, 기증의사를 밝혔다는 게 지금까지 알려진 시발이다. 이에 서울대는 5월19일 정총장명의로 도쿄대에 “기증결정에 감사하며 적극 수용하겠다”는 서한 발송했다.

 한국인의 이목이 온통 지방선거에 쏠려있던 지난달 30일 서울대는 그야말로 `깜짝 발표’를 했다. 발표내용은 “서울대 개교 60주년 및 규장각 창립 230주년을 기념해 일본 도쿄대에 보관돼 있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47책을 되돌려 받기로 도쿄대 측과 합의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어 이를 공식화 했다. 일본 도쿄대도 같은 시점에 서울대와 같은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양교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도쿄대 `기증', 서울대`환수' 명칭을 사용한다고 발표해 환수위를 비롯한 언론의 비난을 사게됐다.

 이런 양교의 물밑 행보도 모른채 환수위 3차 방문단은 서울대발표가 있던 5월30일 출국했다. 물론 도쿄대의 접촉의사를 확인한 행보였다. 도쿄대가 환수위와 서울대 양측채널을 놓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저울질을 한 결과가 됐다.
<龍鎬先기자^yonghs@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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