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수위 반환운동 4년만의 성과"(강원일보)_2010.12.0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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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0-12-02 09:28 조회8,433회 댓글0건본문
지난 2006년 오대산 사고에서 열렸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고유제 모습. 강원일보 DB
오대산 사고본 제자리찾기 심포지엄 발표문 요지
조선왕조실록·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 등 민간의 노력과 정성으로 조선왕조실록에 이어 조선왕실의궤의 환국이 가시화되면서 오대산 사고본 환수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06년 도쿄대에서 서울대에 기증 형식으로 반환된 조선왕조실록은 원소장처인 오대산 대신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되면서 규장각 직인이 찍히는 등 수난을 겪으며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환수 예정인 조선왕실의궤의 경우도 지역의 훌륭한 자산으로 계승·발전시킬 기회마처 박탈된 채 앞서 돌아온 조선왕조실록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것이 지역에서 가장 우려하는 일이다. 이에 따라 조선왕조실록·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와 새평창포럼, 강원일보사는 공동으로 오대산 사고본 환수 문화재의 원소장처 봉안을 염원하는 심포지엄을 마련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해 조선왕조실록 및 조선왕실의궤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이를 지역의 자산으로 발전시킬 방안 등을 심도 있게 논의한다. ◇제1주제:조선왕실의궤 반환운동과 과제 발표자:혜문 대한불교조계종 승려·조선왕실의궤환수위 사무처장 조선왕실의궤는 왕실의 주요 의식과 행사의 준비과정 등을 상세하게 적고 그림으로 만든 문서이다. 이는 의례가 되풀이되는 왕실에서 의례의 본보기를 만들고 후대에 전하고자 도감에서 직접 체계적으로 정리한 기록문서로서 조선시대 왕실에서 거행된 여러 가지 의례의 전모를 소상하게 기록한 서책이다. 지난 8월10일 간 나오토 총리는 `한일강제병합 100년'과 관련된 담화를 통해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의 뜻을 밝히고 이에 수반하는 조치로 조선왕실의궤 등 한반도에서 유래한 귀중한 도서에 대해 한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여 이른 시일에 이를 인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2006년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이하 환수위)'가 출범, 4년간 지속적인 반환운동을 전개하고 한일간 국회의원, 한일 간 시민단체가 협력하여 이루어낸 `한일 관계의 중대한 사건'이었다. 일본정부는 기존의 입장과 달리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를 담아 `실질적 조치'를 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산적한 `한일 문제'를 풀어갈 중요한 전기로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과거사 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 치밀한 전략, 한일 시민단체와 의원 외교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선례가 되었다. 나아가 이 사건은 세계적인 `문화재 반환운동'의 전범(典範)으로서도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의궤가 상징하는 정치적 상징, 문화재적 가치, 반환운동의 경과 등이 지금까지 있었던 `문화재 반환 사례'들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문화재 반환'을 통해 양국 간의 정치문화적 갈등이 어떻게 화해에 이르는가를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조선왕실의궤 반환'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적 한계를 `한·일간 민간의 노력'으로 이룬 `양심의 쾌거'이다. 이 사건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과거사 문제로 고민했던 한·일 모두의 승리이다. ◇제2주제:실록과 의궤의 가치와 의미 발표자:신명호 부경대 교수 조선왕조실록은 국보 151호이자 세계의 기록유산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우리나라의 국보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보물이기도 하다.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의궤 역시 마찬가지다. 실록은 왕의 재위 기간 일어난 일들을 연월일 순서에 따라 사실 그대로 기록했다. 왕의 통치 행위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기록하기 위해 실록은 국가에서 편찬했다. 이 때문에 개인이 편찬하는 야사(野史)와 구별된다. 실록은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의 장구한 세월에 걸쳐 왕조의 사적을 기록했으며 조선시대 각 방면의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역사 기술에 있어 진실성과 신빙성이 매우 높으며 활자로 인쇄·간행된 실록은 한국 인쇄문화의 전통과 높은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실록의 전승을 위한 우수한 보존체계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의궤는 조선 전기에도 작성되었지만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의 것들이다. 조선 후기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기간에 제작된 의궤는 모두 705종이며 그중에서 68종은 분실되고 지금 남아 있는 의궤는 모두 637종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의궤는 왕실 및 국가에서 각종 의례적 행사를 거행할 때 행사 전반을 관할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된 도감(都監)에서 작성한 기록들을 기초로 작성되었다. 의궤에는 도감에서 실제 수행한 준비 사항과 행사 내용을 구체적이면서도 실증적으로 기록했다. 행사에 쓰인 물자의 수량, 가격, 동원된 인원의 수는 물론 의식 절차 하나하나까지 자세하다. 또 대부분의 의궤에는 반차도가 함께 수록되어 왕실 행사를 눈앞에서 직접 보듯이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특히 어람용으로 작성된 의궤의 반차도는 채색을 해 화려한 활동사진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조의궤는 유고에 입각했던 조선왕조의 역사이자 문화 자체이며 동시에 그 정수이다. ◇제3주제:오대산본 실록의 역사와 그 중요성 발표자:배현숙 계명문화대 교수 전존하는 실록 중 가장 큰 수난을 당한 것이 오대산본 실록이다. 조선실록은 조선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책이다. 임진왜란으로 3사고의 실록은 병화의 처참한 피해를 입었으나 불행 중 다행으로 전주사고본은 화를 면해 후대에 전래가 가능하게 됐다. 1911년 조선총독부가 설치되고 식민통치가 시작되자 조선의 사고제도는 종식된다. 조선왕실의 권위를 무시하고 사고에 대한 조사를 마친 일제는 우리나라를 강탈한 후 정족산과 태백산사고의 실록은 조선총독부 학무과 분실로, 적상산사고의 실록은 이왕직 장서각으로, 오대산 사고본은 도쿄제국대학으로 옮겼다. 도쿄제국대학에 진장해놓은 오대산본 실록은 1923년 9월1일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되고, 연구실에 대출됐던 57책만이 겨우 화를 면했다. 후에 17책이 더 발견됨으로써 실제는 74책이 전래되고 있다. 소잔본 중 27책은 1932년 5월 우리나라에 반환돼 경성제국대학(현재 서울대)에 보관·전환됐다. 나머지 47책은 93년 만인 2006년 7월 기증 형식으로 돌아왔다. 관동대지진으로 타고 남은 오대산본 실록이 우리나라로 되돌아 왔으므로 우리는 이 실록을 잘 관리해 역시 자손만대에 물려줘야 할 것이다. 당장의 문제는 이 실록에 대한 홍보에 미진한 점이 있어서 시급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현재 남아 있는 정족산본 1,181책, 태백산본 848책, 오대산본 74책(47책은 미상), 기타 산엽본 21책 총 2,077책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는데, 후에 돌아온 오대산 사고본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아직 등재 신청을 하지 않았다면 등재 신청도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록에 수록된 내용이다. 내용을 읽고 활용해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 지속적으로 인재를 양성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정리=김형기·김상태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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