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불법 반출 도서 1205책 반환]1965년 한일협정 이후 처음… 약탈 문화재 반환 전기될듯(동아일보)_2010.11.09(화) > 조선왕조실록 및 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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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불법 반출 도서 1205책 반환]1965년 한일협정 이후 처음… 약탈 문화재 반환 전기될듯(동아일보)_201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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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0-11-09 09:50 조회9,0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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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불법 반출 도서 1205책 반환]1965년 한일협정 이후 처음… 약탈 문화재 반환 전기될듯


일본의 왕실 도서관인 궁내청 쇼로부에 있는 조선왈싱의궤. 완쪽부터 버인소의궤(寶印所儀軌), 선원보략수정의궤(璿源譜略修正儀軌), 보인소의궤에 실린 어보 그림.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일본의 문화재 반환은 한일관계를 개선하고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정체상태에 빠졌던 약탈 문화재 반환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반환이 아니라 인도라는 표현을 사용한 데다 기대했던 문화재가 반환 목록에서 빠져 이를 놓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민간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문화재를 반환한 것은 1965년 이후 처음.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8월 담화 이후 3개월 만에 합의가 이뤄진 것과 관련해 우리 정부는 일본 측이 최대한 성의를 보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문화재 반환 시기를 늦출수록 일본 총리 담화에 대한 한국인의 평가가 부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일본 정부에 부담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우리 정부 예상보다 많은 수인 1205책의 도서를 돌려준 것 역시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의지 표현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당초 조선왕실의궤 등 600여 책의 도서를 반환할 것으로 예상했다.

광복 이후 우리가 열강으로부터 반환받은 문화재는 약 5000점. 이 가운데 정부 간 협약에 의해 반환받은 것은 2000점 정도에 불과하다. 일본은 1965년 한일 문화재 반환 협약 당시 궁내청 소장분 852점을 포함해 1432점을 우리 측에 반환한 바 있다. 당시 우리 정부가 요청한 문화재 수는 4479점이었다. 이에 비하면 이번 반환은 진전된 것임에 틀림없다. 김봉건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은 “한일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정부 간 협상으로 문화재가 반환되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민간 차원이 아니라 정부 협상에 의해 문화재가 돌아왔다는 점에 각별한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외규장각 도서 반환 협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에 반환되는 도서 문화재 1205책은 모두 일본 궁내청의 왕실도서관인 쇼료부(書陵部)에 있는 것이다. 쇼료부에는 조선왕실의궤, 제실(帝室)도서 등 639종 4678책이 있다. 이 가운데 조선왕실의궤 167책, ‘대전회통(大典會通)’ 1책,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99책, 규장각 기타 도서 938책이 반환 목록에 오르게 됐다. 이들 도서엔 대부분 조선총독부 기증 도장이 찍혀 있다.




의궤는 조선시대 왕실의 주요 행사를 그림 중심으로 기록한 책. 조선 왕조가 얼마나 치밀하게 역사를 기록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물이다. 국내의 조선왕실의궤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그 가치가 높다. 이번에 반환된 의궤에는 명성황후의 장례식 과정을 꼼꼼히 기록한 ‘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 1903년 고종의 순비 엄씨를 황귀비로 봉하는 의식을 기록한 ‘진봉황귀비의궤’, 1901년 9월 순비 엄씨를 고종의 계비로 책봉하는 과정을 기록한 ‘책봉의궤’ 등이 포함돼 있다.

‘대전회통’은 고종 때인 1865년 왕명에 따라 만들어진 조선시대 마지막 법전이다. ‘경국대전’의 내용을 기본법으로 삼고 ‘속대전’과 ‘대전통편’ 등의 입법 규정 내용을 비교하며 현실에 맞게 내용을 보완한 책이다. ‘증보문헌비고’는 18세기 백과사전 ‘동국문헌비고’를 고쳐 1908년 간행한 전통문화 백과사전으로, 제도 문물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궁내청 소장 도서 가운데 반환이 기대됐던 제실도서와 경연(經筵)도서가 대상에서 빠졌다는 점은 논란의 소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실도서는 제실도서관 도장이 찍힌 도서이고 경연도서는 임금이 신하들과 정기적으로 유학 강의를 듣던 경연에 쓰인 서적이다. 제실도서관 직인 등으로 미루어 이들 도서는 조선총독부가 강제로 유출해 갔다는 것이 국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일본 내에 있는 우리 약탈 문화재가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파악한 뒤 정부가 나서서 문화재를 제대로 환수해야 하는데, 덜컥 준다는 것부터 받는 건 오히려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가 ‘반환’이 아니라 ‘인도’라는 표현을 쓴 것을 우리 정부가 받아들인 것에 대해서도 지적이 일고 있다. 일본 정부가 반환이라는 용어에 난색을 표시한 이유의 하나는 법적 의무를 수반하는 반환이라는 용어가 포함되면 일본 의회 통과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음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영우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인도는 약탈했다는 의미를 희석시키는 표현”이라며 “앞으로 계속 한국이 약탈 문화재 반환을 요구할 것을 걱정해서 인도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약탈 문화재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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