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을 찾아 떠난 대장정(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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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7-04-26 12:46 조회9,585회 댓글0건본문
조선왕조실록을 찾아 떠난 대장정(5) | ||||||
친일파와의 투쟁에서 도쿄대까지 | ||||||
내원암 사건과 ‘[조선왕조실록환수위]의 구성 경기도 수락산 자락에 위치한 내원암은 봉선사의 말사로 현재 비구니 스님(주지 재문스님)들이 주석하고 계신 곳이다. 2005년 이 조용한 산사가 뜻하지 않은 송사에 휘말리게 되었는데, 친일파 이해창의 후손 21명이 내원암 경내지 4만 8천평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봉선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25교구 본사로서 이 사건에 관한 대응을 모색, '친일파의 재산권 보호는 위헌‘이라는 취지의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하여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여론이 불리해지자 친일파 후손들은 ’소취하서‘를 법원에 제출, 원고측에 ’소취하의 동의를 구했다.
그러나 봉선사는 ‘항일운동가인 운허스님의 정신이 서린 봉선사가 친일파의 후손과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린 뒤, 현행법상 패소의 가능성이 크더라도 전민족에게 ‘친일파후손의 땅찾기’가 지닌 문제점을 폭로하기 위해 소취하의 요구를 거부, 정면승부를 걸기로 했다. 그러자 친일파 후손들이 ‘봉선사’에 사과 방문하며 소취하에 동의, 조용한 해결을 부탁했으나 봉선사는 “ 지금은 관음보살의 부드러운 자비보다 선사(禪師)스님의 엄중한 죽비 경책이 필요한 때”라며, 강경하고 엄격한 원칙을 고수하며, 조계종 중앙신도회, 민족문제연구소 등과 힘을 합쳐 “친일청산과 민족정기 확립을 위한 조계사 촛불집회”를 열기로 했다. 이렇게 되자 친일파 후손의 땅찾기의 문제점이 사회 각층에 보도되었고, 조계사 집회역시 3000명의 대중이 운집한 가운데 성황리에 봉행, ‘친일파 재산환수특별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여론의 힘을 모아 주었다. ‘내원암 사건’ 자체도 2005년 12월 3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승소함으로써, ‘친일파 땅찾기’를 영원히 종식시키는 선두적 역할을 해낸 것이다. 내원암 사건의 선봉에 섰던 봉선사 혜문스님과 함께 힘을 모아 싸워던 사람들은 내원암 사건’이 ‘친일파 재산찾기 저지’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좀더 의미있는 운동체로 발전하기를 희망했다. 내원암 사건의 승리를 자축하는 자리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도쿄대가 소장하고 있는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의 설명을 듣게 되었고, 모두 흔쾌히 동의함으로써, 결국 내원암의 승리는 ‘조선왕조실록환수위’의 태동으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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