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성지 오대산 월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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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성지 오대산 월정사

나옹 스님(1320~1376)

나옹 스님(1320~1376)

나옹스님의 법명은 혜근惠勤이고 나옹은 호이다.


어머니 정씨가 하루는 꿈속에서 황금빛 새 한 마리를 보았는데 그 새가 날아와 머리를 조아리면서 입에 물고 있던 알을 품속에 떨어뜨렸다. 그 뒤로 어머니에게 태기에 있어 고려 충숙왕 7년(1320) 정월 15일에 나옹을 낳았다.
나옹은 다정하게 지내던 친구의 죽음을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껴 스무 살 때 공덕산 묘적암에서 요연선사了然禪師를 스승으로 출가한 뒤 여러 절을 돌아다니다가 회암사에서 사 년 동안 정진한 뒤 깨달음을 얻었다.
나옹은 스물여덟 살 되던 해에 멀리 중국 땅에 건너가서 더 높은 스승을 만나고 싶어 원나라 연경에 있는 법원사의 인도승 지공화상을 찾아가 불도를 물었다.

지공화상은 낯선 젊은 구도자의 모습을 훑어보며 물었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고려 땅에서 왔습니다.”

“배를 타고 왔는가, 육로로 왔는가, 아니면 신통神通으로 왔는가?”

“신통으로 왔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 앞에서 신통을 보여라.”

그러자 나옹은 그저 한 손으로 다른 한 손목을 움켜잡고 서 있을 뿐이었다. 지공화상이 다시 물었다.

“누가 그대더러 여기까지 오라고 하던고?”

“스스로 왔습니다.”

“무슨 일로 왔는가?”

“후세 사람들을 위하여 왔습니다.”


그제야 지공화상은 나옹을 다른 대중에게 소개하며 절에 머물게 하였다. 나옹은 지공 화상 문하에서 이년을 수학하며 불교사상의 기틀을 확립하였다. 그런 뒤에도 계속 정진하여 평산平山禪師 등 여러 선사들을 두루 만나 선기를 닦고 겨루었다.
십 년 동안 지공과 여러 선사들을 참방參訪 하여 원의 선풍禪風을 충분히 체득한 나옹은 1358년에 다시 귀국하였다. 평양, 동해, 오대산 상두암 등 여러 곳에서 근기에 따라 설법하였고 공민왕의 부름을 받고 동방제일 도량이라 불리는 송광사에도 있었다. 그리고 지공화상이 불법이 흥하리라고 가르쳐 준 대로 삼산양수지지三山兩水之地인 회암사를 크게 중수하였다. 그 뒤 왕명을 받고 영원사로 옮겨 가다가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했다.
오대산에는 기암기석이 없는데 이 또한 나옹스님과 연관이 있다. 북대 미륵암에서 공부하던 나옹스님은 큰 절에서 부처님에게 올릴 공양미를 얻어갔는데 하루는 발우에 공양미를 얻어가다가 높은 바위의 소나무 위에 있던 눈이 떨어져 스님의 발우를 떨어뜨렸다. 이 모습을 본 산신령이 큰스님의 공부에 방해된다 하여 오대산에서 소나무와 바위를 모두 쫓아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오대산에는 기암기석이 없다.
오대산에서는 또 두부가 잘 되지 않는데 이 또한 나옹스님과 관련이 있다. 나옹스님은 늘 두부하고 남은 비지를 얻어 잡수셨는데 하루는 무슨 마음에선지 행자가 비지를 스님에게 주지 않고 하수구에 버렸다. 그 뒤부터 오대산에서는 두부가 잘 안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큰 스님을 잘 시봉하지 못한 행자의 마음이 아쉽기 짝이 없는 이야기다.